우리 만난 사이였네? 윌리엄스-류중일의 유쾌한 시간여행 [MD현장]

[마이데일리 = 잠실 이후광 기자] "이게 니고 이게 내다."

사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1985년 각자의 나라를 대표해 뛰었던 두 선수가 35년이 지나 KBO리그 감독으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LG 류중일 감독은 지난 12일 KIA 맷 윌리엄스 감독에게 1985년 한 신문에 실린 추억의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당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제5회 한미대학야구선수권대회의 한 장면이었다. 사진을 보면 1985년 한양대학교 학생이었던 류중일 감독이 내야수로 등장해 2루 도루하는 미국 대표팀의 윌리엄스 감독을 태그아웃시키고 있다. 류 감독 22세, 윌리엄스 감독 20세 때의 일이었다.

류 감독은 “윌리엄스 감독에게 (경상토 사투리로) ‘이게 니고 이게 내다’라고 말하며 사진을 함께 봤다”고 웃으며 “35년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당시 한국과 미국 대학팀이 정기적으로 교류전을 가졌는데 나도 미국에 가서 뉴욕 메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장에서 야구했던 기억이 있다. 맥주 공장 견학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과거 자신의 플레이를 본 윌리엄스 감독도 감회가 남달랐다. 35년 전 선수로 밟은 한국 땅에서 지금은 감독을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윌리엄스 감독은 “신기한 사진이었다. 그 때는 머리카락이 있었던 것 같다. 재미있었다”며 “다만 상황이 아웃이어서 아쉬웠다. 내가 2루 도루를 시도하면 항상 아웃이 됐던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당시 한국에서 겪었던 일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윌리엄스 감독은 “이태원에서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도로 위의 차들이 모두 멈춰 섰다. 경기장에 가기 위해 호텔로 가서 버스를 타야하니 택시 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며 “호텔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군인들이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아마도 민방위훈련이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자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기에 모든 절차를 무시했다”고 껄껄 웃었다. 윌리엄스 감독은 당시 한국에서 폴로셔츠가 1달러였다는 정보(?)도 전달했다.

두 사령탑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연은 이렇다. 윌리엄스 감독은 지난주 광주 LG 3연전에서 류 감독을 만나 잠실구장 개장 첫 홈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홈런이 떨어진 위치가 궁금했다. 류 감독은 경북고 시절이던 1982년 7월 17일 잠실구장 개장기념 우수 고교 초청대회에서 개장 1호 홈런을 쏘아 올린 주인공. 류 감독에게 위치 정보를 들은 윌리엄스 감독은 전날 계단 운동을 하다 그 지점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3년 뒤인 1985년 윌리엄스 감독도 잠실구장의 담장을 넘겼다. 앞서 언급된 한미대학야구선수권 2차전에서 홈런을 쳤다. 윌리엄스 감독도 자신의 홈런이 떨어진 위치를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그는 “류중일 감독 홈런보다 조금 위쪽인 것 같다”는 재치를 발휘하며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두 감독의 유쾌한 시간여행이었다.

[사진 = KIA 타이거즈 제공]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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