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릴리스’, 사랑은 빠져들면서 미끄러지는 것[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셀린 시아마 감독의 사랑은 빠져들면서 미끄러진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선 18세기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는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을 하다가 결국 헤어진다. ‘워터 릴리스’의 10대 소녀들도 사랑에 흠뻑 빠졌다가 과녁을 비껴간다. 그의 영화에선 사랑은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다는 테마가 잔잔하게 물결친다.

싱크로나이즈드 선수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본 순간 마리(폴린 아콰르)는 덜컥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플로리안은 모든 남성들의 선망을 받고, 남자들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마리는 플로리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갖고 싶어한다. 한편, 마리의 절친이자 엉뚱한 성격을 지닌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는 수영부 남학생 프랑수아와 첫키스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물 속=영화의 주요 배경은 수영장이다. 플로리안에게 첫 눈에 반한 마리는 물 속으로 들어간다. 플로리안은 물 밖에서 우아하게 떠 있기 위해 물 속에선 쉼 없이 발길질을 하는데, 이건 마치 어긋나는 사랑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물 밖의 아름다움과 물 속의 진실은 다르다는 것. 플로리안은 마리를 끌어당기다가도 어느 순간 놓아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마리의 애절한 심정은 수면 위에서 미끄러진다.

물 밖=‘워터 릴리스’의 모든 사랑은 제 갈길을 찾아가지 못한다. 마리는 플로리안을, 안나는 프랑수아를, 프랑수아는 플로리안을 사랑한다. 네 명의 어긋난 관계의 중심은 플로리안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이리저리 떠돈다(그가 남자를 사랑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마리와 프랑수아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플로리안의 주변에서 상처를 입고 방황한다. 안나 역시 그러한 관계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사랑을 향한 네 명의 욕망은 수면을 튕겨나가는 빛처럼 부서진다.

물 위=첫사랑의 씁쓸함을 체험한 마리와 안나는 물 위에 떠있다. 영화 중반 마리와 플로리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후반부에 이르러 마리와 안나가 물 위에 누워 천장에 시선을 던진다. 같은 천장을 바라보더라도, 각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깊게 빠져들지 못하고, 그저 수면만 맴돌 뿐이다. 마리와 안나의 순수한 욕망은 사랑과 섞이지 못하고 물 위에서 부유한다.

‘릴리스’는 백합이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과 변치 않는 사랑이다. 마리는 백합같은 사랑을 꿈꾸며 플로리안에게 빠져들었지만, 결국 물거품같은 현실을 깨닫는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사랑이 떠나거나 부서지는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용감하게 사랑에 빠져든다. 비록 미끄러지더라도, 주체적인 사랑을 위해 몸을 던진다. 셀린 시아마가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다.

[사진 제공 = 블루라벨 픽처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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