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누구'도 아닌, 유일무이 재재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비주류 헤어 '새빨간 숏컷'을 하고 비주류 방식 '연반인'(연예인+일반인)으로 침투해 주류 시장을 장악했다. 재재(본명 이은재)는 새로운 MC 모델 탄생 의의를 넘어 비주류도 주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스스로 브랜드가 됐다.

재재는 SBS 뉴미디어 콘텐츠 '문명특급'의 PD이자 MC다. 유튜브 '스브스뉴스'의 코너로 출발했던 '문명특급'은 뜨거운 화제성에 힘입어 채널 독립에 성공했다. 여전히 SBS 소속이지만 자주적으로 콘텐츠를 창작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다. 프런트맨 재재를 필두로, '문명특급'은 히트 코너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 등 K팝 콘텐츠를 비롯해 영화, 사회이슈 등을 다루며 유튜브 내 최고 웹예능 채널로 거듭났다.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새빨간 숏컷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선 재재는 상상 이상의 텐션을 발산하며 쉴 새 없이 비디오와 오디오를 채웠다. 기존 방송인들로부터 발견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가득했다. 신선했지만 낯설었고, 흥미로웠지만 염려가 있었다. SBS라는 기성 방송국에서 탄생한 이 독특한 여성 PD를 대중이 얼마나 오래 지켜봐줄지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재재는 새로운 방식을 꾀해 우려를 괜한 기우로 만들었다. 마치 오래 만나온 친구처럼 출연자들을 대하지만 결코 무례한 법이 없다. 민망한 상황을 유도해 만드는 단선적인 웃음도 없다. 대신 웃음 유발 역할은 재재가 맡았다. 아이돌들 앞에 먼저 나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으로 기존의 대면 인터뷰 형식을 파괴했다. 사생활 질문 역시 먼저 꺼내지 않고, 출연자가 쌓아온 커리어만으로 콘텐츠를 뽑아낸다. 특정 대답을 노리고 질문을 던지는 여타 인터뷰어(interviewer)들과는 다른 행보다. 관점 자체가 평가자가 아닌, 대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중의 눈을 가지고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동시에, 보통 경계를 늦추지 않는 스타들마저 무장 해제시켜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무엇보다 재재는 상대를 타자화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외모 칭찬, 애교 지시 등은 '문명특급'에서 금기다. 남녀를 구분하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수많은 방송인들이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코미디로 위장한 무례함에 대한 나름의 저항으로 읽힌다.

이런 재재를 향해 '제2의 OOO', '뉴미디어계의 OOO', '여자 OOO' 등의 수식어가 붙곤 한다. 뛰어난 진행 능력을 치켜세우고자 빗댄 말이다. MC로서 발휘하는 능력만 놓고 보자면 유의미한 타이틀이고, 재재의 명성에 대중성을 더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특정한 프레임에 갇히길 거부해왔던 재재였던만큼, 다소 아이러니한 표현이기도 하다.

재재의 방식은 그 어떤 방송인에게서도 보지 못한 개인이 구축한 오직 '재재의 것'이다. 어떤 때는 대중으로, 어떤 때는 MC로, 어떤 때는 아티스트 옆에 서서 쇼맨으로 분하며 포지션 경계마저 지워버렸다. 비주류의 것들로 주류 시장에 당당히 깃발을 꽂으며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재재다.

[사진 = '문명특급' 채널 캡처화면]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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