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 저는 언제든 법을 어길 거예요[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먼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읽자. 아버지 라이오스왕을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관계를 맺어 4남매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오이디푸스왕은 스스로 눈을 찌르고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 아버지를 따라나선 이는 셋째 딸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이 테베를 떠난 후, 안티고네의 오빠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1년씩 교대로 왕이 되자고 합의했다.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어기고 양권을 넘겨주지 않자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 왕의 사위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베로 쳐들어온다. 형제는 서로 죽이고 죽는다. 왕권을 잡은 외삼촌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를 정중하게 매장하고,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방치해 두라고 명령한다. 안티고네는 작은 오빠가 짐승의 밥이 되는 것을 볼 수 없어 명령을 어기고 시체를 매장한다. 크레온은 국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지하감옥에 가둔다.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와 혼인을 약속한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풀어달라고 요청하지만, 거절 당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극단적 선택을 내리고, 하이몬 역시 그 길을 따라간다. 크레온의 아내이자 하이몬의 어머니 역시 목숨을 끊는다.

고전은 현대에 다시 부활한다. 2008년 몬트리올 공원에서 경찰의 부적절한 개입에 한 이민자가 사망한다. 현장에 있던 그의 형제까지도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되자 형제의 여동생이 오빠를 구하기위해 인터뷰에 나선다. 이 뉴스를 본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그 여동생이 ‘안티고네’라고 직감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와 폴리네이케스(라와드엘-제인) 형제는 범죄조직에 들어간다. 이들을 수사하던 경찰의 강압적인 행위로 형 에테오클레스는 사망하고, 동생 폴리네이케스는 추방 위기에 몰린다. 막내딸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작은 오빠를 구하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자신이 대신 감옥에 들어간다. 그는 법정에서 “전 언제든 법을 어길 거예요. 내 심장이 오빠를 구하라고 시켜요”라고 외친다. 코러스 역할은 시민이 맡았다. 이들은 법정 주변에서 노래를 부르고, 소셜 미디어에 댓글을 달고, 도시 곳곳에 안티고네의 얼굴을 그리며 뜨거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고전 ‘안티고네’는 실정법과 자연법의 충돌을 다룬다. 크레온이 반역자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명령한 것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추상같은 법이 살아있어야 국가가 운영될테니까. 반면, 안티고네는 가족이 중요하다. 자연법이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는 “내 가족과 나 사이를 가로막을 권한이 그(크레온)에겐 전혀 없어”라고 말한다. 이어 “저는 당신의 포고가 그만큼 강력하다고 생각지도 않아요. 기록되진 않았지만 확고한 신들의 법을 필멸의 존재가 넘어설 수는 없지요”라고 강조한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어찌 신들의 법(가족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침해할 수 있겠는가. 실정법을 강조한 크레온은 비극을 맞는다. 아들과 아내가 모두 생을 마감했다. 하이몬의 이름에는 ‘핏줄(haima)’의 뜻이 담겨있다. 크레온은 ‘핏줄’을 경시하다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연법을 어긴 대가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난민 추방’을 실정법으로, ‘가족 보호’를 자연법으로 해석한다. 두 오빠가 범죄 조직에 가담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경찰은 과도한 법집행으로 큰 오빠를 사망케했다. 작은 오빠마저 추방 위기에 처하자 안티고네는, 고전의 소녀처럼, 스스로 법을 어기겠다고 선언하고 실행한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으로 끝냈지만, 영화는 희망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영화는 고전과 달리, 안티고네를 살린다. 그것도 더욱 강인하게! 시민권으로 회유하는 판사에게 그런 종이쪼가리는 필요없다고 거부한다. 하이몬의 아버지가 캐나다 생활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큰 오빠를 죽이고, 작은 오빠를 쫓아내려 했던 국가의 법 시스템에 단호하게 저항한다. 고전에선 막내였지만, 영화에선 셋째로 등장하는 이스메네의 현실 타협에도 선을 긋는다.

무엇보다 고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안티고네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고전에선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에게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고, 안티고네를 풀어주지 않으면 가족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한다. 영화에선 정신과 의사 역으로 안티고네 앞에 나타나 현실의 법이 더 무섭다고 경고한다. 예언의 대상과 내용이 다르다. 안티고네는 정신과 의사의 예언에 식은땀을 흘린다. 17살 소녀가 겁을 먹을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어떻게 가족의 비극을 방치하는 국가에 살 수 있겠는가. 그에게 굴복은 없다. 안티고네는 가족의 ‘사랑과 평화’를 앞세워 국가의 ‘증오와 차별’에 맞선다. 2,500년전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모두를 미워하기 보다는 모두 사랑하게끔 타고 났어요.”

안티고네의 심장은 여전히 뜨겁게 뛰고 있다.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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