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의 우울을 변주하다, 레코다메 '톱'[김성대의 음악노트]

톱. 딱 한 글자다. 그 한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서늘하다. 단칼에 베지 않고 천천히 썰어나가는 톱의 잔인한 속성은 마치 이 음반이 서둘러 예고하는 슬픈 결말 같다. 이 결말에는 어떤 살기마저 감돈다. 사람이 늙는 일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첫 곡 ‘The Weaver’의 체념은 바로 그 살기의 불친절한 단서다.

제대로 된 한 방은 다음 곡 ‘톱’에 있다. 신형원의 ‘개똥벌레’, 정여진의 ‘개구리 왕눈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우아하게 비틀어내는 이 곡에서 “슬픔을 썰어버”리는 의성어(“서걱서걱”)는 대책 없이 그로테스크 하다. 이어 긴박한 마라카스 비트와 불퉁한 베이스 리프에 수줍게 불협하는 기타 코드가 미드 템포의 박진감에 투신하고, 이 투신은 급기야 단단한 그루브로 거듭나 곡이 지닌 잿빛 절망을 질식 시킨다.

그럼에도 레코다메의 음악은 어둡다. ‘섬’의 찌그러진 서사가 그렇듯 그의 음악은 또한 정처 없다. 정처 없는 레코다메의 음악과 가사엔 미화도 거품도 없다. 그의 음악은 앙상하고 그의 음악은 삐걱거린다. 지난 곡인 'Sweet Dream'의 멍든 고독은 이번 앨범의 ‘어떤날’에 그대로 얼룩져 번지고, ‘종이나비’가 감춰둔 은밀한 한숨도 이 음반 어딘가에 알게 모르게 숨죽여 있다.

원칙도 작위도 없는 음악. 레코다메는 그저 텅 빈 심연에 음을 떨구고, 떨구어진 그 음이 제멋대로 파장을 일으키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할 뿐이다. “넌 쓰레기”라고 주절대는 ‘취한 나는’을 들어보라. 곡을 짓기 위한 강제적 밑 작업 따위엔 관심 없는 레코다메의 자유로운 즉흥성이 이 곡에는 있다. 그의 음악에서 은연중 재즈의 여유가 느껴지는 건 아마 그래서일 거다.

선뜻 다가가기 힘들지만 막상 사귀어보면 괜찮은 사람. 음악에도 그런 게 있다. 뭔가 뒤틀리고 거북한데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머금은 그 무엇. 유재하를 기억하는 경연 대회 출신인 레코다메는 어쩌면 ‘지난날’의 낭만보단 ‘우울한 편지’의 우울을 훔쳤던 것이리라.

[사진제공=칭긔칭긔]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