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송강이 발레를 가르치자 박인환이 꿈을 춤췄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어깨 내리시고요."

무심한 말투로 채록(송강)이 손길을 내밀자 심덕출(박인환) 할아버지의 어깨가 부드럽게 내려간다. 긴장한 채 소년과 노인의 교감을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도 그제야 사뿐이 발을 내디딘다. 나비 같아 '나빌레라'다.

이상한 드라마다. 몸에 달라붙는 발레복을 입은 노인이 뻣뻣한 팔로 허공을 휘젓는 게 민망스럽고, 얼굴에 솜털 난 소년이 주름 가득한 노인에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며 퉁명스럽게 지시하는 게 달갑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도 덕출과 채록 둘이 '백조의 호수'로 하나 되어 창공을 날아오르는 장면에 간절해지고, 마주보던 채록과 덕출이 비로소 날갯짓하며 뛰어오를 때 '감격'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오르게 되니, 틀림없이 이상한 드라마다.

'나빌레라'는 각자의 사정으로 꿈을 망각한 채 살아가던 존재들이 그 꿈을 어떻게 다시 기억해내는지 그린 순정적 작품이다.

대개의 성장극이 열망 가득한 소년 혹은 소녀를 주인공 삼아 이들이 꿈을 성취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과 달리, '나빌레라'에서 가장 꿈과 열망 가득한 이는 소년 채록이 아닌 노인 덕출이다. 더구나 덕출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게 돼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다.

하지만 '나빌레라'는 성장은 고사하고 기억의 시간도 부족한 덕출을 발레 스튜디오에 들어서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꿈의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왜 그 꿈을 품게 됐는지 기억하는가?'

"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니야.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한 번 해보려고."

꿈은 도구가 될 수 없다.

아버지의 과오와 어머니의 부재로 빛을 잃은 천재 소년 채록, 부상으로 다신 날아오를 수 없게 된 승주(김태훈)는 물론이고 저마다 각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자식들까지, 이들에게 발레를 배우겠단 덕출의 말은 누가 볼까 민망하고 누가 알까 달갑지 않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이제 와 덕출이 발레를 한다고 발레리노가 될 리도, 세상의 인정을 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출은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대신 그저 좋아하는 발레를 배우고 발레를 춤춘다. 덕출은 발레를 통해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려는 것도,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삶의 남은 시간 동안 평생의 꿈이었던 발레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결국 '나빌레라'는 우리에게 '날아오르고 싶다면 날아오르라'고 말한다.

"발레를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회의(懷疑)하거나 "나는 너무 늦었어요" 주저하는 이들에게 덕출이 "너도 날 수 있어"라고 답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날아서 어디를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거다. 날아오르겠다는 결심, 날아오르는 행위. '꿈'은 그 자체가 커다랗고 순수한 목적지였던 것이다.

덕출은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채록에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내일도 나는 그럭저럭 어설플 거야. 물론 최선을 다해서 하겠지만. 부족하고 모자란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라고 말한다.

'나빌레라'가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 마지막 용기였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럭저럭 어설프더라도 최선을 다해 춤출 수만 있다면, 우리도 날아오를 수 있다고. 어쩌면 그게 스스로 꿈을 망각한 채 사는 우리에게 망각의 병에 걸린 덕출이 마지막으로 일깨워주려던 삶의 의미였을지 모른다.

[사진 = tvN 방송 화면]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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