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써 내려간 시사평론, 팎 '칠가살'[김성대의 음악노트]

칠가살(七可殺)

-정의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과 친일파 청산의 일환으로 항일 진영에서 마땅히 죽여도 된다고 규정한 7가지 유형의 처단 대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칠가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1920년 2월 5일 1면에 "칠가살"을 게재하였다. 이는 항일 진영에서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가지 대상'으로 정한 것인데, 첫째 적의 수괴, 둘째 매국적(賣國賊), 셋째 고등 경찰 및 형사·밀고자, 넷째 친일 부호(親日富豪), 다섯째 조선 총독부 관리, 여섯째 불량배, 일곱째 모반자(謀反者)이다.

-의열단의 칠가살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義烈團)에서도 창단 초기부터 '칠가살'을 주장하였다. 즉 1923년 1월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을 천명한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에서도 '칠가살'을 언급하고 있다. 의열단에서 규정한 칠가살은 첫째 조선 총독 이하 고관, 둘째 군부 수뇌, 셋째 대만 총독, 넷째 매국적, 다섯째 친일파 거두, 여섯째 적의 밀정, 일곱째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이었다. 임시 정부와 약간 차이가 있는데, 불량배와 모반자가 빠지고 대만 총독과 반민족적 토호가 들어갔다. -출처 <세계 한민족 문화대전>

록 밴드 팎의 새 앨범 '칠가살'은 저런 뜻을 담고 있다. 4년 전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를 감행했던 이들은 살(煞)풀이로만은 모자랐는지 이번엔 처단해야 할 일곱 대상을 구체적으로 곡 속에 담아 리프(Riff)와 리듬(Rhythm)으로 으깨어 나간다. 이는 소재가 실제 벌어진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작사가 나름의 시선과 해석을 첨부했다는 점에서 음악으로 써 내려간 시사평론 같기도 하다.

팎은 이번에도 트랙 제목들을 짧으면 한 자, 많으면 두 자 속에 가두었다. 가령 연적(硯滴)과 여적(餘滴)이 지난 작품의 문을 열고 닫았듯 이번에는 여역(癘疫)과 여제(厲祭)를 음반의 입출구로 설정했다. 여기서 여역(癘疫)이란 '전염성 열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여제(厲祭)란 '나라에 역질이 돌 때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들을 위로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즉 지난 앨범에서 굿으로 모리배들을 성토한 팎은 이번엔 저잣거리에 내건 모리배들의 모가지에 제를 올린 셈이다.

음반을 보면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이 떠오르는 지옥도를 담은 재킷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전작에선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를 비틀었었다.) 매달고 끓이고 춤추는 이 살벌한 그림을 넘기면 이제 당신과 나는 밴드가 지녀온 짙은 분노와 지친 울분을 적은 '여역'을 만나게 되는데. 저 지옥을 직접 그린 팀 리더 김대인이 서슬 퍼렇게 읽어나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약한 중생이 이르나니 / 저희가 매 순간 미련하여 / 어리석은 짓을 일삼고 / 저희가 매 순간 아둔하여 / 진실하지 못한 것에 빠지고 / 저희가 매 순간 미혹하여 /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합니다 / 개중에는 유난히 흉폭하고 간악하여 / 시도 때도 없이 패악질을 일삼고 /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자들이 있으니 / 이들을 일곱으로 나누어 칠가살이라 명하였습니다 / 어린아이를 능욕하는 자 / 거짓된 믿음을 선동하는 자 / 손과 혀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자 / 사람 목숨으로 저울질하는 자 / 헛소문을 퍼뜨려 낙인을 찍는 자 / 죄 없는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 / 마지막으로 역병을 퍼뜨리는 자 / 본디 생명은 귀한 것이나 / 저들에게는 죽음만이 타당할 것입니다 / 부디 저들에게 자비 없는 심판을 내리시어 / 상처 받은 사람들의 살기 어린 마음을 /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렇게 팎은 시작에서 모든 설명을 끝냈다. 이제 저것들을 우리가 음악으로 풀어볼 터이니 어디 한 번 들어들 보시오, 라는 얘기다. 이 작품에서 '칠가살'은 요절의 요(夭), 같을 사(似), 벌레 충(蟲), 원숭이 참(獑), 판단할 판(判), 해칠 손(損), 빌 도(禱)로 압축돼 우리의 귀가 그것을 풀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요'는 제목과 노랫말에서 한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정인이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사'는 "거짓된 우상과 망상에 엎드린 자"라는 가사를 볼 때 일부 종교단체를 겨냥한 곡처럼 들린다. 연주, 구성, 멜로디 모든 면에서 따로 추천하고 싶은 '충'은 "세 치 혀를 놀리며 사람을 갈갈이 갉아먹는" 키보드 워리어들을 쓸모없는 벌레에 빗댄 표현이며, '참'은 '여역'에서 밝혔듯 "사람 목숨으로 저울질하는 자"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물론 '판'은 "펜 끝이 쑤셔대고 칼끝이 파고드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니면 말고식 추측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작태에 대한 조롱이다. 여기에 "검붉은 괴상망측 손님"과 "촛불 아래 술 한 잔 무병제"라는 가사에서 밴드의 정치적 입장이 보이는 '손'과 지난 2년 가까이 지구를 괴롭힌 코로나19라는 "역병"의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인 '도'를 더해 2021년판 '칠가살'은 끝이 난다.

팎의 음악은 한편으론 공포 영화 같고 어떤 면에선 스릴러 같다. 그러나 이들이 음악으로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추상의 소리가 아닌 우리가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 겪어나갈 '실제 상황'이다. 그런 차원에서 팎이 묘사한 공포와 스릴은 영화이기보단 일상이고, 일상도 평온함보단 분노와 절망에 가까운 일상이다. 단, 그런 일상이 반드시 비극으로만 치달을 이유는 없다는 데 이 음악의 반전이 있다. 뭔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팎의 메시지가 마지막에 기도로 끝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터. 한마디로 이들은 자신들의 연주와 노래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자 말하는 것이고 바라봤다면 천천히 생각 좀 해보고 바꿀 부분은 바꿔도 보자 권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제 읽었던, 언어로든 행동으로든 삶과 강하게 맞서는 것은 좋은 것이며 생동감 넘치는 것들은 끊임없이 주위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 철학자 니체의 잠언은 결국 팎의 음악에도 닿는 말이었다. 그렇게 "강하게 맞서고 생동감 넘치는" 팎의 '칠가살'은 김대인의 말마따나 5년 전 자기들이 추었던 벽사무(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하여 추는 춤)이면서 지금 우리의 행복을 바라는 비나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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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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