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납치 사건'을 아시나요?...'국민타자'는 없을 뻔했다는데...

[마이데일리 = 이석희 기자]1994년 11월22일. 대구의 한 당구장에는 경북고등학교 3학년 투수였던 이승엽과 한양대 야구부원들이 어울려 당구를 치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이승엽이 대학생과 당구를 치게 된 것은 삼성과 한양대 사이 벌어진 ‘스카우트 전쟁’ 때문이었다. 당시 고3 이승엽은 곧바로 삼성에 입단, 프로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다.

반면 아버지 이춘광씨는 대학 진학을 원했다. 이춘광씨는 야구 선수의 생명이 짧기 때문에 대학에서 야구도 하고 공부도 하기를 바랐다. 혹시나 프로야구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대학에서 체육 교사 자격증을 딴 뒤 선생님이 되어서 아들이 행복하게 살길 원했기에 한양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한양대는 일찌감치 이승엽을 스카우트, 가등록을 해버렸다.

이승엽은 고교 대회가 다 끝난 후인 고 3 가을에 한양대 야구팀에 합류, 선배들과 함께 미리 대학생활을 연습하고 있었다. 당시 한양대 감독은 김보연, 코치는 고인이 된 이기호였다. 이코치는 경북고 출신 선배이기도 했다.

문제는 수능이었다. 당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자라도 수능 40점을 받아야했다. 어쩔수 없이 한양대는 수능 전날 이승엽을 고향 대구로 내려보냈고 혹시 수능을 포기할까봐 야구 선배도 함께 동행시킨 것이다.

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경북고 선배였던 최무영 스카우트와 홍준학(현 단장)이 당구장에 있던 이승엽을 납치(?), 한양대 선배들로부터 떼어놓은 것이다. 사실 납치라고 표현했지만 대학보다는 프로에 관심이 많았던 이승엽은 순순히 고교 선배였던 최무영 스카우트를 따라 나온 것이었다. 훗날 한양대 이기호 코치는 "삼성이 이승엽을 납치해 갔다"라며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엽 납치에 성공한 삼성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였다. 입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이승엽은 미성년자,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당연히 아버지 이춘광씨는 도장을 찍어줄 수가 없었다. 이미 한양대에 진학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한양대는 이승엽을 대한야구협회에 등록해버렸다.

‘납치’에 성공했지만 삼성은 어쩔 수 없이 이승엽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프로행을 강력히 원했던 이승엽이 11월23일 치르진 수능에서 '꾀’를 냈다. 수능은 치되 점수는 입학 커트라인인 40점미만을 받기 위해서였다.

한때는 백지 답안지를 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승엽은 훗날 이에 대한 이야기를 sbs 힐링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힌 바 있다.

이승엽은 이날 방송에서 MC인 김제동으로부터 “수능 200점 만점에 40점만 넘으면 대학을 가는데 공부를 너무 못해서 대학을 못 갔다?”는 물음을 받았다.

이승엽이 밝힌 수능 점수는 37.5점. 그의 소원대로 40점을 받지 못해 대학 진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연히 한양대도 어쩔수 없이 이승엽을 포기했고 아버지도 낙담했지만 아들의 고집대로 삼성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이승엽은 “대학에 가지 않기 위해서 수능을 보러 가면서 시험을 망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1교시는 실력대로 치루고, 나머지 시간에는 1번 5번에 오답이 많다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1번과 5번 위주로 찍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이승엽은 “내 의도가 그대로 통한 것. (대학을)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다. 실력대로면 120점은 족히 받았을 거다. 운동하면서 그 정도 점수 받는 게 대단하지 않나?”라며 실제로 수능시험에서 120점을 맞지 않았음에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터트렸었다.

만약 당시 이승엽이 대학에 갔더라면? 아마도 ‘국민타자’ 이승엽은 프로야구에 영원히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승엽의 판단이‘국민타자’로 이어진 것이다.

[이승엽 은퇴식 장면. 사진=힐링캠프 화면 캡쳐].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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