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vs심정수…2002~2003 세기의 홈런대결이 그립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2002년과 2003년 세기의 홈런대결이 그립다.

KBO리그 2002시즌과 2003시즌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삼성 이승엽과 현대 심정수의 홈런대결이었다. 물론 2002시즌 홈런 레이스는 2파전이 아닌 3파전이었다. 47홈런의 이승엽, 46홈런의 심정수가 1~2위였지만, 3위는 45홈런의 호세 페르난데스(SK)였다. 그래도 이승엽과 심정수의 2파전으로 느껴졌던 건 페넌트레이스 최종일에 극적으로 희비가 갈렸기 때문이다.

삼성과 KIA를 제외한 6개 구단은 10월19일에 페넌트레이스 일정을 마쳤다. 심정수는 그날 잠실 LG전서 홈런을 치지 못하며 46홈런으로 시즌을 마쳤다. 반면 삼성은 19일에 이어 20일에도 광주 KIA전이 준비된 상황. 20일에는 광주 KIA-삼성전만 편성됐다.

그날 이승엽은 정규이닝 동안 홈런을 치지 못했다. 그렇게 이승엽과 심정수의 공동 홈런왕이 탄생하는 듯했다. 그런데 2-5로 뒤진 KIA가 8회말 극적으로 3점을 뽑아내면서 연장까지 갔다. 그렇게 극적으로 이승엽에게 타격기회가 추가로 주어졌다. 결국 이승엽은 연장 13회초 오봉옥을 상대로 극적인 결승 솔로포를 터트렸다.

2003시즌은 과장해서 얘기하면, 순위다툼 이상으로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레이스가 관심을 모았다. 이승엽이 간발의 차로 앞서가면 심정수가 따라잡았다. 이승엽은 6월22일 대구 SK전서 SSG 김원형 감독에게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때렸다. 심정수는 엄청난 벌크업으로 화제를 모으며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당시 이승엽(56홈런)과 심정수(53홈런)는 나란히 KBO리그 50홈런 시대를 열어젖혔다. 더구나 이승엽은 오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아시아 최다홈런(55개)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또 다시 페넌트레이스 최종일에 극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10월 2일 대구 롯데전이었다. 0-2로 뒤진 2회말 선두타자로 등장, 이정민에게 추격의 좌중월 솔로포를 쳤다.

2003년은 야구장에 잠자리채 열풍이 일어난 시즌이기도 했다. 이승엽의 홈런공이 경제학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시즌 막판 삼성 경기에 내야석이 아닌 외야석부터 관중이 들어찼다. 시즌 막판 아시아 최다홈런 신기록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승엽과의 승부를 고의로 피한 구단들도 있었다. 급기야 잠자리채를 쥔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각종 캔을 투척하며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KBO리그는 크게 보면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계기로 폭발적 인기를 얻은 게 맞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승엽과 심정수의 강렬한 홈런 레이스가 바닥으로 떨어졌던 야구인기를 회복하는 기폭제가 됐던 게 사실이다.

아울러 모든 구단이 전력을 넘어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홈런타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계기가 됐다. 타자들은 이승엽 특유의 예술 스윙, 심정수의 벌크업에 큰 관심을 가졌다.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더 놀라운 건 당시 이승엽과 심정수의 나이다. 1975년생의 심정수가 27~28세, 1976년생의 이승엽이 26~27세였다. 두 사람은 20대에 거포로 성장해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KBO리그는 최근에도 종종 치열한 홈런 레이스가 펼쳐진 시즌이 있었지만, 대부분 30대 베테랑의 맞대결이었다.

2002~2003년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뀐 현재, 20대 젊은 거포가 보이지 않는다. 20대 타자들 중 통산홈런 1위가 구자욱(삼성, 118개)이다. 2021시즌 유일한 20대 20홈런(22개)타자였다. 그러나 구자욱은 홈런타자가 아닌 중거리타자다. KBO 통산홈런 순위를 보면 1위 이승엽(467홈런)을 추격하는 2위 최정(403홈런)을 제외하면, 톱랭커 대부분 은퇴를 목전에 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타자다.

한국야구 수준이 19~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투수들의 공은 더 빨라졌고 구종의 다양성, 완성도가 향상됐다. 수비시프트가 다양화됐고, 타자에 대한 투수들의 견제가 극심해졌다. 아마추어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하면서 '홈런의 맛'을 모르고 프로에 온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최근 10개 구단 젊은 타자들 중에선 웨이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우고 첨단 데이터를 앞세워 과학적으로 접근, 홈런타자를 목표로 성장하는 선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수년 전 발사각 혁명이 일어났다. 배럴타구가 중요해진 시대다. 홈런타자의 가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특별하다.

희망은 있다. 연령대를 좀 더 낮춰보면 2000년생, 만 22세의 노시환(한화)이 지난해 18홈런을 치며 장타자로 성장 중이다. 한화가 전략적으로 육성 중이다. 갈 길은 멀지만 나이가 무기다. 1999년생 한동희(롯데)도 최근 2년 연속 17홈런을 터트리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야구의 미래 가치와 먹거리를 위해 더 많은 노시환과 한동희가 나와야 한다.

19~20년 전처럼 20대 젊은 거포들의 치열한 홈런 레이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현재의 짜릿함을 만끽하면서 미래까지 흐뭇하게 그려볼 그런 홈런타자들이 나올 수 있을까. 최든 다시 침체된 한국야구를 끌어올릴 모멘텀이 될지도 모른다. 2002~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가 그립다.

[이승엽과 심정수의 2002~2003년 모습과 잠자리채를 든 관중.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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