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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3층짜리 상가. 성남시의원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2층 높이로 걸려있다. /국민일보 온라인 캡처·A씨 제공]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거대 선거 현수막이 학원을 가리니 빨리 철거해주세요. 환기도 안 되고 햇빛도 안 들어옵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학원 강사 A씨는 출근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가 건물 2층 길이에 달하는 거대 선거 홍보용 현수막이 건물 세 면을 전부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층 전체를 학원으로 운영하는 A씨는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형광등을 전부 켜야 했다. 평소 빛이 잘 들던 창문이 현수막으로 모두 가려져서다.
이에 A씨는 해당 건물에 선거 사무소를 차린 성남시의원 후보를 찾았다. A씨는 후보의 남편과 대화할 수 있었다. 남편 B씨는 “학원을 운영하지 않는 줄 알고 현수막을 걸었다. 건물주에게도 현수막 게재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생존, 영업과 관련된 일이다. 빛도 바람도 다 가리고 이게 뭐냐, 얼마나 어두운지 보이시느냐, 당장 치워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B씨는 “한 달간 전기세를 부담하고 A씨 학원 현수막을 크게 걸어주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화재 발생 시 학생들이 대피해야 하는데 모든 창문을 막아둬 대피가 불가능하다”며 “그 책임은 누가 지냐”고 안전상의 이유를 들며 다시 한번 홍보물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B씨는 “내가 다 책임지겠다.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는데 너무하신다”며 “선거 홍보가 끝나는 13일 정도만 참아 달라. 인부와 크레인을 새로 불러야 해 수백만원이 든다”고 답했다.
A씨는 “이 좋은 날 햇빛도, 바람도 안 들어오니 답답하다”며 “골목상권 살린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면서 주변 상인을 죽이면 어떡하냐”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B씨 측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결례에 사죄드리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며 “건물주와 합의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거 및 이동 비용이 만만찮아 조치가 힘들다”며 “투표가 끝나자마자 조속히 현수막을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A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 수정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구청 등 자치단체는 민원을 처리해주지 못했다. 해당 현수막이 6·1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선거 홍보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선거와 관련된 광고물을 단속에서 배제하고 있다. 또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시민이 이를 훼손하거나 철거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실제 선거용 옥외광고물과 관련한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해결이 어렵다 보니 각 자치단체는 후보자 현수막 처리 관련 민원을 모두 선관위로 이첩하고 있다.
수정구청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현수막은 선거 관련 시설물이기 때문에 시에서 단속할 수 없어 선거관리위원회로 이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도 공직선거관리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현수막은 단속할 수 없어 대부분 후보자에게 연락해 이를 옮겨 달라고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 역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현수막 강제 철거 또는 단속은 어렵다”며 “다만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해당 후보자 측에 연락해 이전 등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직선거관리규칙에는 애드벌룬, 네온사인, 형광 홍보물을 사용하거나 다른 후보자 현수막을 가리는 방법 등이 아니라면 홍보물을 후보자 협조 없이 철거 또는 이전할 수 없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시민들이 영업 피해나 통행 불편을 겪는다는 지적이 선거철마다 제기되고 있다.
건물 외벽 외에 선거 현수막을 버스 정류장에 설치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도 있다.
19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가로형 현수막을 시민들이 버스에 승차하는 낮은 위치에 걸었다”며 “최소한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게시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와 논란이 됐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소식에 “(건물에 내건 현수막 때문에) 불이 나서 탈출을 못 하면 생명을 잃는 건데 어떤 책임을 진다는 거냐”, “당선은 중요하고 시민들 불편,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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