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당한 이강인→2011년 손흥민도 그랬다...캡틴의 위로에 되찾은 미소 [유진형의 현장 1mm]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17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이강인(21·마요르카)이 국내에서 열린 A매치 두 경기 동안 단 1분도 뛰지 못한 채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6만여 명 관중들의 함성 소리에도 벤투 감독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강인은 그라운드 밖에서 몸을 풀다 5번째 교체 선수로 백승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고개를 떨군 채 벤치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코치도 동료 선수들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던 이강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1년 6개월 만에 대표팀 부름을 받은 이강인은 자신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단점으로 지적받던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번뜩이는 플레이와 송곳같이 정확한 왼발 패스는 물이 올랐다. 현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도움 공동 1위(3개)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자신의 가치를 실력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구상에는 이강인이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친선경기에서 전반 35분 손흥민의 헤더골로 1-0 승리했다. 손흥민은 풀타임 뛰며 경기를 지배했고 경기 후 양 팀 모든 선수들과 일일미 악수를 하며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실망한 이강인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굳은 표정의 이강인을 본 손흥민은 먼저 다가가 악수를 한 뒤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강인은 손흥민의 위로를 받은 뒤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이강인 힘내라"라는 관중들의 응원에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강인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손흥민의 위로가 많은 힘이 된 모습이었다.

손흥민은 지난 2010년 18세 나이로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전격 발탁되었다. 당시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신인으로 떠오르며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박지성, 이영표 등 대선배들과 함께 아시안컵 무대를 밟았기 때문에 한동안 벤치를 지켰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현재 이강인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손흥민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강인이 현재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떤 말도 위로가 안된다. 경기 못 뛴 선수가 가장 슬프기 때문이다. 얼마나 경기에 뛰고 싶었겠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려고 노력했다"라며 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강인에게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것을 걱정했다. 지나친 관심이 선수 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며 팬들과 언론의 자제를 부탁하기도 했다.

한편 이강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강인은 "경기에 뛰지 못해 아쉽지만 언젠가는 팬들 앞에서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때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며 "경기장에서 많은 분들이 내 이름을 불러줘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함성과 성원에 걸맞은 선수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다"라며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대표팀에서는 벤투 감독의 외면을 받았지만 소속팀 마요르카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멤버다. 라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이강인은 다음달 2일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벤투 감독을 향한 무력시위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흥민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이겨낸 뒤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이강인도 아직 기회가 많다. 이제 21살이다. 이강인은 앞으로 10년 동안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 중의 하나이다.

[손흥민의 위로에 미소를 되찾은 이강인.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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