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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배구여제' 김연경이 복귀한 뒤 흥행 1위를 질주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지휘봉을 잡기 싫어하는 구단으로 전락했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이야기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권순찬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시즌 6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을 2위로 올려놓은 사령탑을 경질한 이유는 '방향성'이었다. 지난해 마지막 경기에서 '선두' 현대건설을 격파하며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분위기는 단숨에 가라앉았다.
흥국생명이 언급한 '방향성'의 문제는 무엇일까. 신용준 신임 단장은 지난 5일 취재진 앞에서 해명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신용준 단장은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이 경기 운영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특히 로테이션 문제에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선수 기용과 전술 등은 지휘봉을 잡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신용준 단장은 로테이션 지적은 '개입' 아니라는 납득하기 힘든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로테이션은 개입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개입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이는 아니다. 선수 기용이 아닌, 운영 문제의 트러블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용준 단장의 해명은 모두 거짓이었다. 권순찬 감독 경질의 주된 이유는 고위층의 개입 때문이었다. 흥국생명 모기업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김여일 전 단장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 수차례 개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순찬 감독이 말을 듣지 않자 결국 지휘봉을 빼앗았다.
선수들의 증언도 일치했다. '베테랑' 김해란은 지난 5일 GS칼텍스전 이후 '기용 문제와 관련해 선수들이 느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느꼈다. 선수들도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마음이 상한 선수가 있다. 나도 그랬다"고 밝혔다. '배구여제' 김연경 또한 "기용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몇 번은 경기를 원하는 대로 하다가 (개입으로 인해) 진 경우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납득할 수 없는 구단의 행동에 선수들마저 모두 등을 돌린 것.
흥국생명은 10일 사과문을 통해 "팬들께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도 머리 숙여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배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경기운영 개입이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된 결과로써 결코 용납될 수도 없고, 되풀이되어서도 안될 일임에 분명하다. 앞으로 경기운영에 대한 구단의 개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감독의 고유 권한을 전적으로 존중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이제 흥국생명은 선수들뿐만이 아닌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기피하는 구단으로 전락했다. 권순찬 감독이 경질된 후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던 이영수 대행은 5일 경기가 끝나고 나서 사임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신임 사령탑으로 내정된 김기중 감독 또한 10일 감독직 고사 의사를 밝혔다.
김기중 감독은 "배구계 안팎에서 신뢰를 받아도 어려운 자리가 감독직인데,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현 상황이 부담"이라며 "지금 감독직을 수행하는 것이 그동안 노력해 준 선수단과 배구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고사 사유를 공개했다.
흥국생명의 '간판스타' 김연경은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김연경이 FA를 통해 팀을 떠나게 된다면 흥국생명은 감독도, 코칭스태프도,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 기피하는 구단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팬들은 권순찬 감독 경질 이후 트럭시위를 통해 흥국생명 구단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배구인들은 물론, 돌아선 팬심까지 다 떠나갈 기세다.
[흥국생명 김연경, 신용준 단장, 선수단. 사진 = 마이데일리 DB]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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