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불완전하고 불안한 이들의 안착을 위한 필연과 우연[MD칼럼]

[정유이의 영화수필]

“우리 집에 갈래?” 공원 그네에 앉아 비를 맞으며 책을 보던 열 살짜리 소녀 사라사에게, 열아홉 살 대학생 후미가 우산을 씌워주며 말한다.

키 큰 청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라사, 후미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와 같은 관객들은 촉을 발동시키며 불안을 감지할 것이다. 영화를 많이 봐서 아니, 현실의 축적된 경험으로 영화의 반쯤 되는 줄거리에 이미 도달해있다.

사라사는 이모 집에 살며 밤마다 사촌에게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후미의 집에서 아이다운 모습을 찾고 휴식 같은 두 달을 보낸다.

후미 또한 사라사의 자유로움과 순수함을 보며, 그를 둘러싼 대기의 색깔마저 달라진 듯 보인다. 뉴스에는 사라사의 실종 소식이 나오지만 사라사는 후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 날 후미는 납치 혐의로 체포되어 끌려가고, “후미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울부짖는 사라사의 증언에는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15년 뒤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되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찍는다. 두 사람을 향한 세상의 편견은 매우 견고해서, 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게 한다.

사라사는 후미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으로 후미 가까이 공기처럼 머문다. 후미는 몇 겹의 고요함이 씌워져 있는 듯한 얼굴로 사라사를 대하지만, 어딘가에 사라사의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어 보인다.

15년 전 어린 사라사에게 선택권을 온전히 주었듯이, 구름 속에 갇힌 달이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시간에 맡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어디에 있을지 몰라 밤낮을 오가며 유랑하는 달처럼, 불완전하고 불안한 사람들이다. 사라사의 남자친구 료는,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로 사랑의 어긋한 발현을 광적으로 드러낸다.

료의 집착은 자해까지 하면서 사라사를 괴롭힌다. 유년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사라사는 료에게 완전한 여자이기를 거부한다.

후미의 여자친구 아유미는 후미를 사랑하지만, 늘 공허하고 같이 있어도 각기 다른 공간에 있어 보였다. 후미의 엄마는 장애가 있는 후미를 낳은 자신도, 후미도 실패자라고 침묵으로 인정한다.

이 영화는 말이 절제되어 있다. 말의 배경이 침묵이 된다고 누군가 그랬다. 누명을 쓰고도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않고, 누명을 밝혀줄 증언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두 사람은 속내를 쉽사리 드러내지도 않는다. 침묵의 힘으로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것일까. 침묵 속 진실을 알고 있기에 내가 정한 영화의 결말을 끝까지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 또한 영화 보기 반복 학습의 낙인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한다.

사라사의 직장 동료가 잠시 맡긴 8살짜리 아이를 두 사람이 돌보다가, 료의 폭로로 후미가 다시 경찰에 잡혀간다. 경찰 조사에서 사라사의 증언은 또 무시되고 15년 전 그때를 재현하는 듯한 장면이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이라고 사과하는 사라사 앞에서 힘겹게 떨면서 바지를 내리는 후미, 유년시절에서 멈춘 그의 성징이 어슴푸레 드러난다. 그는 불완전한 성인이었다.

영화의 미장센을 되짚어 보니, 섬세하고도 유려하게 그려진 두 사람의 마음이 그제야 보인다. 강렬하지도 않은, 극적이지도 않은, 격동적이지도 않은 두 사람의 모습들이, 긴 세월 단단한 바위를 뚫고 올라온 야생화 같았다.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영화는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절망과 아픔은 덧나지 않게 단단한 딱지가 되게 하고, 이지러지는 삶의 귀퉁이도 반듯하게 잡아주는 구원의 존재인 것을. 잠든 후미를 바라보는 사라사의 표정이 빛처럼 스며들고, 후미가 만들어주는 커피 향이 말을 대신한다.

인간은 본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불안한지도 모른다. 그런 결핍을 어디서 채우고 있으며, 어디에 안착하려고 애쓰고 있을까. 결핍을 채우는 노력과 경험은 혜안이 되기도 하지만, 몹쓸 고정관념으로 쌓은 편견은 시야를 가린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라고 알랭 드 보통이 그랬다. 나 역시 다다를 수 없는 완벽과 절대 안착을 위해 불안한 궤도를 비행하며 살고 있다. 행여, 함께할 동승자만 있다면 새로운 경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전문위원 겸 수필가.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포스터 캡쳐]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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