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데라] 디지털 약자와 실손보험 청구

[마이데일리 = 구현주 기자] 설날 고향 집에 내려가 한 일은 엄마의 실손의료보험 청구 돕기였다. 60대인 엄마에겐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 병원과 약국에서 서류를 발급하고 이를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접수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40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실사용자이지만,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불편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병원 갈 일이 많아져 보험금이 절실한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실손보험 청구는 더 어렵다. 주변에 도와줄 지인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닌 경우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하게 만든다.

녹색소비자연대가 2021년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47.2%는 실손보험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10년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시행은 아직 요원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서는 먼저 별도의 서류 발급 없이 소비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보험사에 필요한 서류를 전송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의료기관과 일부소비자는 개인정보 유출과 향후 보험사의 데이터 악용 가능성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은 향후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대 의견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다.

사실 우려가 제기된 개인 정보 유출이나 보험사 데이터 악용 가능성 등 문제는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사전대책을 마련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안이다. 또 다시 이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포기한다면 피해는 오히려 디지털금융 취약계층이 볼 가능성이 크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인한 부작용을 미리 방지하자는 취지는 옳지만, 무작정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쳐서는 안 되겠다.

소비자가 실손보험금 청구라는 당연한 권리를 손쉽게 누리도록 의료업계, 보험업계, 금융당국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구현주 기자 wint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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