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후배를 괴롭히는 가혹행위로 인해 '국가대표 리베로' 오지영을 방출한 페퍼저축은행이 조 트린지 감독과 계약까지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바람잘 날이 없는 페퍼저축은행이다.
페퍼저축은행은 28일 "AI 페퍼스는 침체된 구단의 분위기 쇄신 및 다음 시즌에 대한 빠른 준비를 위해 고심 끝에 조 감독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021년 여자부 7번째 구단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생 구단이었던 만큼 당장의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고,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시즌 3승 28패 승점 11점으로 리그 7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2022-2023시즌 7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5승 31패 승점 14점으로 조금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올 시즌에는 '성적'까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FA(자유계약선수)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페퍼저축은행은 2022-2023시즌이 종료된 후 3년 총액 23억 2500만원에 'FA 최대어' 중 한 명이었던 박정아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아웃사이더 히터 채선아와 3년 총액 3억원, 내부 FA 자원이었던 이한비와 3년 총액 10억 6000만원, 오지영과 3년 총액 10억원의 계약을 맺으며 전력을 다졌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그리는 그림은 없었다.
지난해 6월 2023-2024시즌을 이끌기로 했던 한 아헨 감독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이에 페퍼저축은행은 조 트린지 감독을 선임하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당시 페퍼저축은행은 "국제 무대에서 여러 국가대표팀의 승리에 기여한 경험이 있는 15년 경력의 베테랑"이라고 트린지 감독을 소개하며 사령탑의 화려한 이력을 덧붙였다.
이어 페퍼저축은행은 "풍부한 미국 리그 경험으로 다져진 코칭 스타일을 바탕으로 아헨 킴 전 감독의 훈련 체계에 익숙해진 선수들이 빠르게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 김동언 단장은 "국제 경기 경험과 여러 배구팀의 코칭 및 감독 경력을 통해 높은 명성을 쌓아왔고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코칭 시스템으로 소속팀의 성과를 개선한 경험이 있는 지도자"라며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 힘과 활력을 더하고 팀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고 확신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 트린지 감독 또한 "AI페퍼스의 감독직을 맡게 되어 큰 영광이고, 구단과 선수단의 승리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을 잘 알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 쌓았던 경험을 잘 활용해서 AI페퍼스 팬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선사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페퍼저축은행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다잡고, FA 시장에서 엄청난 금액을 들여 뎁스를 보강하는 등 야심차게 2023-2024시즌을 시작했지만, 현재 분위기는 초상집과 다름이 없다.
28일 기준 페퍼저축은행의 성적은 3승 28패 승점 10점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 23일 한국도로공사와 맞대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무릎을 꿇은 페퍼저축은행은 무려 '23연패'를 당하게 됐고, '여자부 리그 최다 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작성했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남자부 KEPCO(現 한국전력)이 2007-2009시즌에 걸쳐 기록한 27연패의 기록도 넘볼 기세다. 이러한 가운데 대형 악재까지 발생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약했던 오지영이 최근 후배들을 괴롭히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최악의 성적과 함께 팀 기강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이에 한국배구연맹(KOVO)는 지난 27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오지영에 대한 인구너침해 행위에 대한 2차 상벌위원회를 개최했다. 그 결과 KOVO는 "오지영 선수의 팀 동료에 대한 괴롭힘, 폭언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며 오지영에게 1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KOVO는 "상벌위원회는 이 같은 행위들은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이며 앞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척결되어야 할 악습이므로, 다시는 유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재하기로 하여 선수인권보호위원회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 상벌규정 제10조 제1항 제1호 및 제5호, 상벌규정 별표1 징계 및 제재금 부과기준(일반) 제11조 제4항 및 제5항에 의거, 오지영 선수에게 '1년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오지영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 이에 페퍼저축은행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페퍼저축은행은 27일 KOVO 상벌위원회가 종료된 후 "구단 내 불미스러운 일로 AI페퍼스를 아껴 주시는 팬 여러분과 배구연맹 그리고 배구 관계자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내부조사를 통해 오지영 선수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 사실을 파악 후, 곧바로 선수단에서 배제하고 배구연맹에 이를 신고했다. 상벌위원회 징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금일(27일) 부로 오지영과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팀 분위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오지영과 결별한지 하루 만에 페퍼저축은행은 또다시 움직임을 가져갔다. 이번에는 사령탑과 결별이었다. 페퍼저축은행은 28일 "침체된 구단의 분위기 쇄신 및 다음 시즌에 대한 빠른 준비를 위해 고심 끝에 조 감독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계약 해지지만,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결정. 일단 페퍼저축은행은 이경수 수석 코치가 당분간 팀을 이끈다.
페퍼저축은행은 "차기 감독 선임 전까지는 이경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이라며 "조속히 차기 감독 선임 절차에 착수해 팀을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조 감독과 함께 한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와 그의 가족들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고 덧붙였다.
과연 페퍼저축은행이 오지영 후배 괴롭힘 사태와 사령탑 계약 해지라는 충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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