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후드’, 당신은 다이아몬드입니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가히 셀린 시아마 감독 열풍이다. 새해부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더니 ‘톰보이’ ‘워터 릴리스’에 이어 ‘걸후드’까지 성장 3부작이 모두 개봉됐다. 이로써 프랑스 여성 감독이 1년에 총 4편의 영화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그만큼 한국 관객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유니버스를 공감하고 사랑한다. 과거 작품까지 소환할 정도의 능력과 인기를 지닌 감독은 흔치 않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열광적 지지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부터 성장 3부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성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권유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둘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18세기 프랑스, 동성애가 금지된 보수적 사회에서 둘은 사랑을 불태운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그 순간만큼은 자기 감정에 충실했고, 그 사랑을 영원히 봉인했다.

‘톰보이’의 미카엘(조 허란)은 소녀와 소년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킨다. 진짜 이름 로레를 놔두고, 남자아이 미카엘처럼 행동한다. 10살에 불과한 로레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축구를 좋아하고, 모험을 즐긴다. “여자아이는 그렇게 놀면 안돼”라는 사회적, 문화적 억압을 밀쳐내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려한다. 쉬운 길은 아니다. 감독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로레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워터 릴리스’에서 마리(폴리 아콰르)는 싱크로나이즈드 선수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사랑한다. 그러나 플로리안은 뭇 남성들의 관심을 받는다. 그가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마리의 사랑은 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쉬르), 남학생 프랑수아, 플로리안과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히면서 과녁을 비켜간다. 물속에서 세차게 발길질을 해야만하는 싱크로나이즈드처럼, 마리 역시 자신의 감정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다.

‘걸후드’의 마리엠(카리자 투레)은 홀로 생계를 이끄는 엄마를 대신해 두 동생을 보살피고,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오빠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16살 소녀다. 어느 날 자유로운 영혼의 세 친구 레이디, 아디아투, 필리를 만나 '빅'이라는 이름을 얻고 변화를 시도한다. 마리엠은 거칠게 싸움도 하고, 첫사랑에 빠지고, 일탈도 감행한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는 어디로 갈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 ‘워터 릴리스’ ‘걸후드’를 관통하는 한 가지 키워드는 ‘실패’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로레/미카엘은 여전히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마리의 사랑은 어긋났으며, 마리엠의 현실 탈출 역시 벽에 부딪힌다. 그러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지금 어딘가에서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을 것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실패를 보듬는다. “그래도 괜찮아”라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리한나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워.”

당신이 다이아몬드다.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블루라벨픽처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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