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X지현우의 '빛나는 순간', 파격 멜로로만 읽히지 않았으면 [양유진의 클로즈업]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영화 '빛나는 순간'은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배우 고두심과 지현우의 세대를 초월한 멜로 때문이다. 실제 두 사람은 33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파격 로맨스'로만 여기기엔 무게감 있는 메시지로 가득한, 가슴이 뻐근해지는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다.

제주에 사는 이름난 해녀 진옥(고두심)은 침상 생활을 하는 남편 병시중을 들며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진옥에게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이 나타난다. 진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경훈이지만, 진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경훈은 어떻게 진옥의 마음을 얻을지 고민하다가 진옥의 곁에서 물질을 도우며 살갑게 대하고 매니저 역할까지 자처한다. 진심으로 다가오는 경훈에게 진옥도 차츰 마음을 열고 결국 촬영에 응한다. 이후 진옥과 경훈은 소중한 존재를 바다에서 잃었다는 공통점으로 급속히 가까워진다. 진옥의 삶에 조금씩 섞여드는 경훈과 경훈을 만난 뒤 잊고 있었던 '빛나는 순간'을 되찾은 진옥은 나이와 직업, 지역 차이를 뛰어넘는 교감을 나눈다.

연출을 맡은 소준문 감독은 전작 '올드 랭 사인'(2007), '알이씨'(2011), '연지'(2016)에서 우리 사회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바. 이번 신작 '빛나는 순간'을 통해서도 장기를 발휘해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공감을 이끈다. 영화에 따라붙은 '33살 차이'라는 파격적인 텍스트를 자극적인 소재로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진정한 '빛나는 순간'을 일궈냈다.

여성 노인과 청년 남성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관객에게 애써 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나이를 숫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상처 입은 두 세대가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해 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이 완성된다"라는 감독은 비슷한 아픔을 지닌 두 사람이 상처를 어루만지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고두심은 '국민 엄마'라는 기존 이미지를 보기 좋게 깨부쉈다. 신인 시절부터 49년 동안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며 모성애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메워온 그가 처음으로 해녀 진옥, 온전한 '나'로서 감정을 표출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인다. 워낙 농익은 열연 덕에 한참 후배인 지현우와의 케미도 이질감 없이 형성, 섬세한 호흡을 주고받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여지게 했다.

더불어 고두심은 실제 제주 출신답게 유려한 방언 연기, 주근깨투성이의 그을린 피부로 제주 해녀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하며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 후반부 '숨을 조금만 더 참았으면 살려낼 수 있었을 텐데'라고 딸과의 이별을 자책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 롱테이크도 압권이다.

여기에 '빛나는 순간'은 극적인 사건 없이 잔잔하게 전개되는 서사와 느린 호흡 속 곶자왈, 이끼 폭포 등 제주의 풍광을 스크린에 펼쳐내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한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가수 아이유의 '밤편지'가 엔딩 크레디트에 삽입, 진옥의 심경을 대변하는 노랫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빛나는 순간'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95분.

[사진 = 명필름 제공]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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