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란 소망은 결코 내일 지구가 망해버릴 리 없는 탓에 자조적이다.

엄마는 빚쟁이, 아빠는 사기죄로 복역 중인 세완(박세완)의 청춘은 지구가 망해버리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캄캄하다. 하지만 넷플릭스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세완을 비롯해 다국적 청춘의 삶을 적나라하니 어둡게 드러내진 않는다. 제작진은 이 시트콤을 보는 이들에게 단지 우리가 청춘임을 상기시킬 뿐이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청춘(靑春).

신분을 감추고 기숙사에 온 제이미(신현승)부터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떠나버린 카슨(카슨 엘렌), 오갈 곳 없는 신세의 현민(한현민)까지 국제기숙사 속 청춘의 삶은 때로는 고달픈데 때때로 처량하다.

다행인지, 정작 이들은 심각하지도 우울에 빠져들지도 않는다. 그저 다 함께 모여선 매운 컵라면이나 치킨, 피자를 나눠먹고, 친구의 고민을 들어도 웃어버리거나 대충 놀리면서 넘겨버릴 뿐이다. 가난이나 실연, 동성애까지 제작진도 이들의 고민에 그럴듯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런 시트콤인 것이다. 어떤 비관(悲觀)도 '피식' 하고 웃어넘기는 시트콤. 큰 감동이나 격렬한 웃음은 없어도 그만이다. 어느 순간 세완과 현민이 나의 새로운 친구처럼 여겨지는 걸로 충분하다. 그럼 비록 내일 지구가 망해버릴 리 없어도, 국제기숙사 친구들이 삶의 무게를 대강 덜어내는 모습에 '어쩌면 나의 고민도 별 것 아닐지 모른다'는 안도감이 들어버리는 까닭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민니(민니)가 천방지축처럼 보이고, 테리스(테리스 브라운)가 바람둥이처럼 보이는 것으로 족했다. 이따금 연기가 어설플지언정 캐릭터가 곧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연기의 진정성면에선 부족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신예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어준 박세완의 연기는 완숙했다. 세완 역이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의 주제를 짊어진 캐릭터인 데다가, 코믹 연기보다는 정극 연기가 주된 위치였음에도, 박세완은 혼자 무거워지지도 홀로 연기력을 돋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기숙사 청춘들이 각자의 고민을 다같이 어우러져 해결했듯, 박세완은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진 연기로 친구들과 하나 되어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의 청춘을 이끌었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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