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한국의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방해 공작에 맞서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갑자기 내전이 발생한 이후 대사관 직원과 가족은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도시 한복판에 고립된다. 통신도 끊겨 본국에 지원 요청도 못하는 상황. 어느날 밤, 북한 대사관 일행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린다. 북한 사람과 엮이기만 해도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시기에 한신성 대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린다.

류승완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에게 매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소년가장’으로 가난을 경험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수십가지의 직업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단편영화를 찍었다. 전설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쓰고 남긴 자투리 필름에 자비 400만원을 들여 1997년 단편 ‘패싸움’을 만든 뒤 나머지 세 편을 연출해 완성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어린 시절부터 체험한 그는 한 편만 만들고 사라질 수도 있는 냉혹한 충무로에서 20년 넘게 버텼다. 그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다.

‘생존의 DNA’가 가장 극적으로 발휘되는 상황은 고립된 공간을 뚫고 ‘탈출’하는 순간이다. 전작 ‘군함도’는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착취 당하던 조선인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지옥섬’을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부당거래’ 등에서 폭력과 파국의 수렁에 빠진 인물을 다뤘던 그는 최근 들어 극한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을 그린다. 그가 제작한 ‘엑시트’까지 포함하면 ‘모가디슈’에 이르기까지 연속 세 편이 최악의 고비에서 빠져나오는 스토리를 담아냈다. ‘군함도’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가 ‘희망가’였음을 떠올려보라. 그는 희망을 만들어내는 인물을 보듬는다.

‘모가디슈’의 한신성은 “살 사람은 살아야겠죠?”라고 말한다. 림용수 역시 “이제부터 우리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라고 선언한다. 북한대사관 일행과 함께 탈출 계획을 세우는 한신성은 림용수에게 “우리는 오로지 이 전쟁통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야한다는 것. “기능공으로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던 류승완 감독은 ‘액션키드’ 출신답게, ‘매드맥스’가 부럽지않은 강렬하고 속도감있는 카체이싱으로 스릴감을 끌어올리면서 생존을 향한 인물들의 절박한 심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총알을 막기위해 책, 모래주머니 등으로 방탄효과를 낸 것 역시 류승완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남북이 대결을 벌이다 어느 순간 서로 도와준다는 점에서 ‘모가디슈’는 ‘베를린’의 잔향이 느껴진다. 왼손잡이 한신성이 좌익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양손을 쓰듯, ‘베를린’ 정진수(한석규)는 “로타리에서 좌회전도 안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북한을 적대시하던 그도 동명수(류승범)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표종성(하정우)을 풀어준다. 이 영화에서도 ‘생존’이 화두다. 표종성은 호텔을 급습한 아랍인들이 총탄을 퍼붓는 순간, 임신한 아내(전지현)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셋은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고립된 공간에 내던져지고, 꼼짝할 수 없는 덫에 걸려 들어도 류승완 감독의 인물들은 책임감을 갖고 돌파한다.

그는 일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위해 몸부림 치는 인물과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25년전 에피소드는 오늘의 류승완 감독을 설명해준다. 1996년, 뭘 해봤자 소득이 없고 생활은 점점 힘들어져 사수였던 박찬욱 감독에게 “영화 그만둬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능이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박 감독의 말을 최근의 류 감독 영화에 적용하면, “희망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희망이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로 바꿔도 되지 않을까.

그의 인물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희망을 품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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