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라우’, 핏자국을 남겨라[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브라질 북동부 세라 베르드 인근 바쿠라우(Bacurau)의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을 맞아 마을의 구성원이 모두 모인다. 이들 앞에 베르드 시장 토니가 나타나 찢어진 책과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을 주며 지지를 호소하는데, 그는 댐을 건설하는 명목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물을 끊이버린 인물이다. 그가 주민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돌아간 뒤, 하늘에선 드론이 날아다니고 식수차엔 총구멍이 난다. 게다가 마을 곳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자, 마을 청년 파코치(토마스 아퀴노)는 살인을 저지른 뒤 숨어지내는 룽가(실베로 페라라)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와 줄리아노 도르넬리스 감독의 ‘바쿠라우’는 ‘디스토피아적 서부극’의 외형에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강렬하게 접목시켜 백인우월주의의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백인에게 철저하게 짓밟힌 브라질 원주민의 ‘피의 역사’를 일깨우는 한편, 살인을 게임처럼 즐기는 백인 용병을 등장시켜 그들의 폭력이 여전히 현재 진행중임을 파워풀한 연출로 담아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까운 미래”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그들의 폭력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했으며,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다.

밤에만 사냥하는 새, 바쿠라우

바쿠라우는 ‘밤에만 사냥하는 새’라는 뜻이다. 때를 기다렸다가 단 한 번의 습격으로 용병과 정치인을 궤멸시키는 마을 사람들의 투쟁과 승리를 암시한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두 명의 낯선 외지인에게 “박물관에 왔냐”고 묻는다. 용병은 박물관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다. 그들에게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억압과 수탈에 시달렸던 바쿠라우 사람들은 백인이 저지른 역사를 잊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이 영화는 역사를 기억하는 자(원주민)와 몰각한 자(백인)가 벌이는 ‘피의 학살극’이다.

존재와 부존재

‘바쿠라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정치인이 지도에서 삭제했다. 구글 검색도 안된다. 부패한 정치인에게 원주민은 흔적 없이 사라져야할 존재일 뿐이다. 그들을 제거하는 백인 용병 역시 “있는데 없는 존재”다. 우두머리 마이클(우도 키에르)은 “엄밀히 말해 우리는 여기 없는 거야. 우리가 여기 없다는 걸 증명할 서류가 있어”라고 말한다. 존재와 부존재의 역설. 서류상으로, 용병은 ‘유령같은 존재’다. 남미 원주민을 셀 수 없이 많이 죽였던 백인 역시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였다.

너희의 폭력을 입증하겠다

원주민은 ‘여기 없는 존재’인 용병 여러 명을 ‘여기 있는 존재’로 바꾼다. 백인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박물관에서 대반격에 나선다. 밤에만 사냥하는 바쿠라우처럼, 그들은 숨어서 자신들을 몰살시키러 들어온 백인 사냥을 벌인다. 피가 튀기고, 목이 잘린다. 죽어가는 용병은 벽에 핏자국을 남긴다. 백인이 자행한 폭력의 역사는 그렇게 박물관에 보존된다. 서류상에 없는 존재였던 백인은 바쿠라우 역사에 영원한 인장을 찍는다.

“벽은 그대로 놔둬요. 있는 그대로요.”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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