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길 '성북동 산책길'[이기자의 낮이밤이]

[마이데일리 = 이석희 기자]갑자기 봄이 곁으로 찾아왔다. 3월의 공기는 따사롭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계절의 따사로움을 맘껏 누려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한시간만 짬을 내면 멋스러운 길이 우리네 곁으로 다가온다.

복잡한 혜화동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북악산 품 안에 안긴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길이 시작된다. 골목골목 이야기가 있는 성북동이다. 느리게 걸어보면 좋을 산책길 하나쯤은 알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기자의 낮이밤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법정 스님을 따라 길상사를 시작으로 성북동을 걸었다.

성벽 위로 뜨고 지는 해, 성북동

자연은 물론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창작의 영감을 얻고 그들의 작품을 완성했다. 김환기, 이태준, 최순우, 한용운의 미소가 겹쳐지는 곳.

서울의 중심과 닿아있으면서도 독립적이고 고즈넉한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곳.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은 다행히 성북동 언덕을 오르지 못했다. 도심 속 나만의 휴식처를 찾고 싶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성북동 골목골목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쉬어가는 곳, 길상사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던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주인공인 김영한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증해 지은 길상사. 성북동 산책길은 길상사에서 시작한다.

한때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하던 시인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냄으로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볕 좋은 6월, 길상사 나무 그늘에 앉아 전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그녀의 고백을 되짚어본다. 저 아래 복잡한 도심의 소음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공간. 길상사에서 잠시 머물다 보면 지친 몸과 마음이 모두 쉬어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옥에 머물다, 수연산방

성북동과 관련된 작가들을 말할 때 상허 이태준 선생을 빼놓을 순 없다. <문장강화>와 <무서록> 등의 저자로 대표 단편소설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이태준은 1940년대 중후반에 월북한 이후 자세한 행적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수연산방은 과거에 선생이 직접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한 곳으로 현재는 외종손녀가 전통찻집으로 개방하고 있어 덕분에 방문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직접 삶고 졸여낸 호박 앙금과 팥으로 만든 단호박 빙수는 달지 않고 시원해 여름철이면 수연산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카페가 아닌 찻집에 들러 여유를 느껴보고 싶다면 수연산방에 들러 이제는 한결 따스해진 봄날의 햇볕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사진=이석희 기자]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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