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처럼 치밀하고 날카로웠던 '샤프' 김은중 감독[심재희의 골라인]

[마이데일리 = 심재희 기자] 고전이 예상됐다. 팀 스피드와 개인 기량에서 한 수 뒤져 보였다. 토너먼트 단판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체력도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승리를 위해 판을 짜기 쉽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치밀하고 날카로운 '샤프 전략'이 더 빛을 발했다. 한국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김은중 감독이 별명처럼 '샤프하게' 승리를 이끌었다.

김은중 감독은 에콰도르와 16강전에서 승리한 뒤 체력 열세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다. 나이지리아가 하루 더 쉰다는 점, 막판 뒷심이 좋다는 부분 등을 간파하고 기본 전략을 짰다. 그리고 꺼낸 기본 전형이 4-2-3-1과 4-5-1의 혼용이다. '에이스' 배준호를 벤치에 앉히는 모험을 하면서도 엉덩이를 뒤로 빼고 수비에 더 중점을 뒀다.

말이 쉽지 수비적으로 전형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펀치를 계속 허용하면서 상대의 힘을 뺀다는 의미인데, 자칫 잘못해 선제골을 일찍 내주면 걷잡을 수 없는 패배 분위기에 휩싸일 수도 있다. 엄청난 모험이다. 수비적으로 나서서 실점하지 않더라도 마냥 버틸 수만은 없다. 승부처를 지정해 공격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전반전 수세의 분위기를 후반전 중반 어느 정도 바꿨다. 배준호를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투입해 반전을 꾀했고, 전체 볼 점유율을 높이며 대등하게 맞섰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체력에서 밀려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전반전보다 라인을 올리다 보니 수비에서 위험한 공간이 생겼다. 김은중 감독은 위기에서 교체 카드를 빠르게 활용하며 팀 에너지 고갈을 막았다.

0의 행진으로 연장전을 맞이하자 에콰도르와 16강전에서 보였던 세트피스 한방을 장전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연장 전반 5분 득점에 성공했다. 이날 첫 유효슈팅을 결승골로 연결했다. 완벽한 에콰도르전 재현이었다. 코너킥 공격에서 이승원-권석현 콤비가 빛났다. 약속된 세트 피스 공격으로 나이지리아를 침몰시켰다.

경기 후 김은중 감독은 눈물을 보이며 "버텨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자신이 짠 치밀하고 날카로운 전략과 전술을 잘 따라주며 힘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해 결과까지 만들어낸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전략적 열세를 참고 또 참고 또 참은 후에 찾아온 기회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합작했다.

이쯤 되면 '김은중 매직'이라는 말을 써도 전혀 과찬이 아니다. 대회 준비 기간에 개최 장소가 인도네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바뀌어 혼란스러웠지만 흔들리지 않고 잘 준비했다. 대회 들어서 다소 억울한 판정이 연속해서 나왔고 일정상으로 힘든 여정이 이어졌지만 꿋꿋이 버티며 살아남았다.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김은중 감독은 선수 시절 연령별 대표팀에서 '라이언킹' 이동국과 영혼의 투톱을 형성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그는 이동국과 다른 스타일로 골을 잘 잡아냈다. 이동국이 엄청난 피지컬과 슈팅력으로 득점을 곧잘 했다면, 김은중은 영리한 침투와 날카로운 마무리로 상대 골문을 꾸준히 갈랐다. '샤프' 김은중이 지도자로 변신해서도 냉정하고 '샤프한' 스타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은중 감독, 나이지리아전 선발 라인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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