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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1989년 MBC 공채탤런트 19기로 데뷔, 드라마 '엄마의 바다', 'M', '전쟁과 사랑', '컬러', '프로포즈', 그리고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까지 숱한 작품에서 '훈남' 주인공으로 등장해온 배우 이창훈이 악역을 한다고 했을 때 '아니, 이창훈이 왜?'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주인공이 아니기도 했다. MBC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제작진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를 섭외하려고 했을 때, '이창훈이 하겠어?'라고 반신반의하던 제작진이었다.
그런데 이창훈은 구용갑을 선택했다. 머리를 금빛으로 탈색했고 사악한 표정으로 악랄한 웃음 소리를 흘렸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창훈에게선 볼 수 없던 악인의 미소였다. 왜 이제야 이런 연기를 한 걸까 싶을 정도였으며, 당연히 그에게 호평이 쏟아졌다. '신 스틸러', '미친 존재감' 등의 말이 이창훈의 이름을 수식하기 시작했고, 한 스태프는 그에게 '한국의 미키 루크'란 찬사를 보냈다.
이창훈은 구용갑을 통해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구용갑은 너무 비열한 인물이었다. 그런 역할은 처음이었고, 조연 역시 낯설었는데 막상 드라마를 마치고 나니 내 마음이 예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이창훈이 구용갑으로 보여준 연기력은 탁월했고, 구용갑은 이창훈의 지난 이미지를 깨트렸지만 사실 이창훈은 드라마 초반 하차하려는 마음이었다. "3~4회 정도 찍고 못 하겠다고 하고 싶었다"던 이창훈은 "구용갑은 너무 사악하고 야비하고 치사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에게 스스로 거부감이 들었고 이 때문에 훌륭한 연기를 펼치지 못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창훈은 과거 로맨틱한 남자주인공으로 살던 '배우 이창훈'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한 장면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구용갑 안에 들어가자" 하는 의지가 그를 구용갑과 한 몸이 되게끔 이끌었다. 그래서인지 이창훈은 드라마가 끝난 지금까지도 구용갑의 머리 색을 한 채 예전에 갖지 못하던 여유로운 마음을 얻게 됐다. 이창훈은 "요즘 너무 편하다. 턱수염도 마음껏 길러보고 별 걸 다해보는 것 같다. 하하" 하며 호탕하게 구용갑처럼 웃었다.
"내가 그동안 많은 멜로 작품을 했고, '순풍산부인과'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하야시 역할도 했다. 그런데 김인영 작가는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모두 넣어 구용갑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냈더라. 특히 내가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김인영 작가에게 얘기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구용갑의 취미를 야구로 설정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배우에 대해 연구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작가였던 것이다. 드라마 '그래도 좋아'의 김우선 감독에게 '이 역할 내가 해도 될까?' 했더니 김인영 작가 작품이란 사실을 알고 '무조건 해! 김인영 작가가 모든 걸 캐치해 낼 거야'라고 적극 추천하더라. 그 말이 결국 사실이었다."
구용갑을 통해 배우 인생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 이창훈은 예전에는 거리를 뒀던 예능에도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 첫 출발이 MBC 예능프로그램 '세바퀴' 고정 패널. 최근 첫 녹화를 가졌고 13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편하고 재미있게 녹화했다"는 이창훈은 "내가 치고 들어가는 멘트에 오히려 작가가 말릴 정도였다"며 웃었다.
지난달에는 절친인 배우 김희선이 진행하는 SBS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에 출연해 화려한 입담을 뽐내고 김희선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던 이창훈은 앞으로 예능에 적극적으로 나설 마음가짐이다. 그는 "'세바퀴'에서 패널로서 많이 배울 것이다. 배워서 보조 MC도 해보고 나중에는 예능 MC도 한 번 해보는 게 꿈"이라며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에도 출연해보고 싶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고 탁구, 볼링도 잘한다"고 했다.
원래 예능은 망설여지던 분야였지만 이창훈은 구용갑으로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예능은 그 용기로 나선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창훈은 "단 내 천직은 배우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내가 처음 아침드라마를 할 때 사람들은 '이창훈, 한물 간 거 아냐?'라고 했다. 하지만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미니시리즈만 하다 보면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들 때쯤 드라마가 끝나버리더라. 그래서 난 일일드라마를 선택했다. 진짜 배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내가 예능에 나간다고 '왜 저러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번에도 역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예능에서 많이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쌓을 것이다. 내 천직은 배우다. '남자가 사랑할 때'를 통해 이제야 진정한 배우가 된 느낌이고, 여기서 얻은 자유로운 마음으로 많은 경험을 해 악역 등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것이다."
[배우 이창훈. 사진 = 블리스미디어 제공-MBC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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