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커피+이온음료 세례, 천신만고 끝 감격의 '첫 승'…복수 다짐한 곽빈 "다음에는 소화기 뿌려야 할 거 같아요" [MD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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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다음에는 소화기를 뿌려야 할 거 같아요"

두산 베어스 곽빈은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팀 간 시즌 4차전 홈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6⅓이닝 동안 투구수 103구, 7피안타 3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 천신만고 끝에 시즌 첫 승을 손에 넣었다.

이승엽 감독이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때부터 혀를 내둘렀던 선수가 있었다. 바로 '토종 에이스' 곽빈에 대한 평가였다. 사령탑으로 부임한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에 곽빈을 오랜기간 지켜봤던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고, 올 시즌 곽빈이 일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교류전에서도 '에이스' 곽빈이 많은 경험을 쌓기를 기대하며 선발 투수로 낙점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곽빈의 정규시즌 등판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였다. 곽빈은 지난달 26일 KT 위즈를 상대로 가진 첫 등판에서 5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3실점(3자책)으로 역투했지만, 승리와 연이 닿지 못했다. 그리고 31일 KIA 타이거즈와 맞대결에서는 6이닝 3실점(3자책)으로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승리는 커녕 오히려 패전을 떠안았다.

두 차례 승리를 수확하지 못한 곽빈은 4월 첫 등판인 롯데 자이언츠와 맞대결에서는 5이닝 6실점(6자책)으로 시즌 최악의 투구를 펼치게 됐고, 불운은 계속됐다. 12일 LG 트윈스전에서는 6⅔이닝 2실점(2자책)에도 3패째를 기록하자, 18일 삼성 라이온즈와 맞대결에서 다시 한번 5이닝 5실점(5자책)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 결과 5경기에 무려 4패를 기록하게 됐다. 특히 곽빈은 삼성전에서는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각종 불운이 쏟아졌다.

좀처럼 승리와 연이 닿지 못하던 곽빈은 지난 24일 NC 다이노스와 맞대결에서 6이닝 동안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시즌 세 번째 퀄리티스타트에도 불구하고 또 첫 승을 수확하는데 실패했는데, 이날은 달랐다. 곽빈은 최고 153km 직구(44구)를 바탕으로 커브(28구)-슬라이더(2구)-체인지업(7구)를 섞어 던지며 다시 만난 삼성을 상대로 지난 18일 등판의 아쉬움을 제대로 털어냈고, 7경기 만에 첫 승까지 맛봤다.

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의 첫 승을 축하고 있는 양석환./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의 첫 승을 축하고 있는 양석환./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의 첫 승을 축하고 있는 최원준./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의 첫 승을 축하고 있는 최원준./두산 베어스

곽빈은 이날 1회부터 선두타자 김지찬에게 볼넷을 내주며 경기를 출발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양의지는 "1회부터 볼 4개를 던지길래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곽빈은 후속타자 이재현을 병살타로 잡아내더니, 구자욱을 우익수 뜬공으로 묶어내며 무실점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2회에는 두 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첫 삼자범퇴를 기록, 3~4회 또한 주자를 내보냈지만, 별다른 위기 없이 순항했다.

첫 위기는 5회였다. 곽빈은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뒤 류지혁과 이병헌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1, 2루 위기에 몰렸는데, 침착하게 김성윤을 삼진 처리했고, 승리 요건을 갖췄다. 그리고 6회에는 김지찬에게 내야 안타, 구자욱에게 좌전 안타, 김영웅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만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강민호를 좌익수 뜬공으로 묶어내며 퀄리티스타트를 완성했다.

투구수에 여유가 있었던 곽빈은 7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첫 타자 류지혁을 유격수 직선타로 돌려세운 후 이병헌에게 안타, 김성윤에게 볼넷을 내준 1, 2루 위기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았지만, '필승조' 최지강이 마운드에 올라 후속타자들을 모두 요리했고, 곽빈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게 됐다. 그리고 8회 김강률, 9회 홍건희가 차례로 등판해 곽빈의 첫 승을 지켜냈다.

보통 굵직한 기록을 달성했을 때 축하의 물세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캡틴' 양석환과 최원준은 7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둔 곽빈을 향해 커피와 이온음료, 물 등을 섞어 뿌리며 축하했다. 곽빈은 "(최)원준이 형이 첫 승을 했을 때 내가 못 뿌린 것이 조금 아쉽다. 다음에 원준이 형에게서 좋은 기록이 나오면 그때는 소화기를 뿌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온갖 음료들이 섞인 탓에 찝찝하지만 곽빈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춰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양석환은 곽빈에 대해 "커피도 돌리고, 인사도 90-도로 하고 (곽빈이) 안 하던 짓을 하면서 눈치를 주더라"고 폭로했다. 이에 곽빈은 "커피는 투수들과 내기를 했는데 져서 돌리는 과정에서 야수 형들도 같이 마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샀다. 그렇게 부담을 준 것은 아니었다"며 '90도로 인사를 했다더라'는 말에 "모든 것을 리셋하는 기분으로 임했다"고 웃었다.

7경기 만에 첫 승은 어떤 느낌일까. 곽빈은 "야수 형들과 코치님들께 많은 위로와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게 힘이 됐다. 2021년에도 첫 승이 정말 늦게 나왔는데, 당시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1군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첫 승에 쫓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곽빈./두산 베어스

그동안 승리와 연이 닿지 않는 과정에서 팀도 승리하지 못하면서 마음고생을 했던 곽빈. 그는 "작년에는 (승리를 하지 못해도) 팀이 많이 이겼던 것 같은데, 내가 나왔을 때 팀이 지니까 그게 가장 답답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내 승리가 많으면 좋지만, 그보다는 팀 승리를 조금 더 우선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등판할 때는 '많이 이기자'는 생각으로 임하는데, 그게 안 돼서 많이 속상했다"고 덧붙였다.

그 힘겨운 기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곽빈은 "작년에 (양)의지 형이 9승에서 10승을 못하고 있을 때 '어차피 승패는 50대 50이니까, 던질 때 승리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던져라'는 말을 생각해왔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할 때부터 '오늘 승리하는 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곽빈은 이날 커브를 제2 구종으로 사용하며 삼성 타선을 제대로 요리했다. 곽빈의 커브는 일본에서 '타격달인'으로 불리며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롤모델로 잘 알려진 야나기타 유키(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구종. 곽빈은 "이제 야구도 데이터 싸움이다. 내 커브의 피안타율이 좋더라. 그래서 자신이 없을 때는 '커브를 던져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타자들이 커브를 생각했을 때 내 직구와 다른 변화구들이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원준은 곽빈에게 커피와 이온음료, 물 등이 섞으며 취재진을 향해 "더러운 것을 뿌려야 깨끗하게 씻겨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7경기 만에 거둔 값진 승리, 이제 곽빈에게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펄펄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잠실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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