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블랙머니’, 김혜수·조진웅이 필요한 이유[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과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는 한국 외환위기 2부작으로 보인다. 두 영화는 감독도 다르고, 제작사도 다르지만 무너진 한국 경제 시스템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다. 미증유의 외환위기 사태로 촉발된 IMF의 굴욕적 협상(‘국가부도의 날’)은 한국경제를 뒤흔들었고, 그 사이에 허약해진 금융 체계를 비집고 들어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태(‘블랙머니’)가 벌어졌다.

두 영화엔 ‘이너 서클’이 등장한다. ‘국가부도의 날’의 엄성민 작가는 IMF 협상 당시 대책팀이 비밀리에 운영됐다는 기사에 착안해 시나리오를 썼다. ‘블랙머니’에서 사모펀드에 부실 은행을 팔자고 추진하는 세력도 자기들만의 네트워크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뒤로는 사리사욕을 챙긴다. 관료와 금용인은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언제나 한 배를 탄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1997~1998년 IMF 사태 당시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앉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도 감행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하루 아침에 공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피해자를 그렸다. ‘블랙머니’에서 단식농성을 불사하던 어느 금융 노동자는 끝내 숨을 거뒀다. 사모펀드가 수조원의 돈을 챙겨 유유히 빠져 나가는 동안, 노동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등졌다.

‘국가부도의 날’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과 ‘블랙머니’의 좌충우돌 검사 양민혁(조진웅)은 가공의 인물이다. 두 영화는 ‘만약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최악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극중 김혜수는 정부 자산을 담보로 ABS(자산유동화증권)를 발행하자고 제안하는데 이어 마지막 승부수로 “차라리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고 주장한다. 실제 당시에도 이러한 소수의 의견이 존재했다.

‘블랙머니’의 양민혁 검사는 BIS 조작 의혹과 자격이 안되는 사모펀드의 실체 등을 폭로하지만 그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다. 정지영 감독은 양민혁 검사의 시선을 따라 당시의 헐값 매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사모펀드 론스타는 매각 지연을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5조원의 소송을 걸었다. 이제 곧 판결이 나오는데, 전망이 밝지 않다. 외환위기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처럼, 한시현이 IMF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면 세상이 바뀌었을까. 양민혁의 주장을 검찰 상층부가 받아들였다면 은행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혹이 해명되지 않고, 관련자가 아무런 책임을지지 않고 있는 사이에 피해자만 양산되는 현실에선 양심과 도덕으로 무장한 능력있는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한시현과 양민혁같은 인물이 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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