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우리도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저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휴머니스트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북에디터 박단비] 어릴 적부터 엄마의 이야기, 여성들의 이야기에는 항상 관심이 많았다. 언제든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귀 기울였다. 여러 이야기를 그러모아 시뮬레이션을 하며 나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아야지 하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나도 상처받았다. ‘성차별은 없어졌다’, ‘요즘은 여자들이 더 목소리가 크다’,‘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아직은 멀었다.

상사에게 처음 결혼 소식을 전하던 날, 나는 2시간가량 조언(?)을 들었다. “난 단비 씨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뽑았는데, 결혼하고 나면 분명 이 정도밖에(이만큼의 절반) 성장 못할 거야” “애는 언제 낳을 건데? 아직 생각 없다고? 남자친구도 그렇대? 그거 단비 씨 속아서 결혼하는 거야” “결혼한 선배들 지금 다 뭐 하는지 알아?” 몇 년 후 같은 팀 선배 두 분이 결혼하고 나서는 “셋이서 애 낳는 순번 정해”라는 말도 들었다.

다음 회사에서도, 그다음 회사에서도 저 정도로 직접적인 사람만 없었을 뿐 다양한 조언과 압박이 있었다. 다행히 결혼 후 7년간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고, 그간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우려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도 나는 도태되지 않고, 일을 잘하고, 집안도 잘 가꾼다고.

나의 엄마,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모든 여성은 항상 일을 해왔다. 모든 남성이 일을 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것보다 더. 하지만 그들의 일은 ‘인정’받기 힘들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특별할 것이 없는 당연한 일이었고, 때로는 집에서 하릴없이 노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남편 대신 나가서 돈을 벌어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푼돈이고 별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그런 그들에게 주목했다. 인터뷰와 전문가 데이터를 통해 가족을 위해 학업보다는 생업을 택했던 엄마. 극심한 시집살이 속에서도 안팎으로 노동을 하던 엄마.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 실제 가장 역할을 하면서도 모든 공은 남편에게 돌려야 했던 엄마 등등.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던 엄마들 일을 살펴보고, 인정하고, 그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군들 나의 엄마를 떠올리거나 나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여성의 일에는 가혹한 세상이다.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평생 ‘임금 노동’과 ‘돌봄 노동’을 분주하게 오갔으면서도, 늘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엄마에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엄마 스스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엄마가 울었거든요. 페미니즘을 배워보라는 말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바뀌기 싫다’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한테는 페미니즘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혼하라는 얘기로 들린대요.”

너무나도 공감되면서 가슴이 아팠다. 여성은 스스로를 바꾸는 것조차 어렵다. 자신의 삶을 부정해야 하거나 내 가족을 난도질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부디 엄마와 딸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와 아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을 인정하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중받는 일, 자랑스러운 일은 성별을 가리지 않으니까.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북에디터 박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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