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내년 혹은 내후년 벚꽃을 기다리며

레이지본이 19일 홍대클럽 빅팀 콘서트에서 <벚꽃엔딩>을 록 버전으로 부르고 있다.

[도도서가 = 정선영] 내가 사는 동네 인근 홍제천은 봄이면 벚꽃으로 가득 채워진다. 매년 봄이 그러하듯 주말 낮이면 곳곳에서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맘때를 맞아 나는 벚꽃 구경 대신 <벚꽃엔딩>을 기타로 연습 중이다. 꽃놀이를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온화하겠지만, 내 표정은 뭐랄까 짜증이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레슨 때 기타 선생님은 네 마디 코드를 시범 연주한 후 내게 일러주었다. 매우 낯선 곡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타 반주만 듣고 노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멍한 표정을 본 기타 선생님이 다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겨우 알아차렸다. 전 국민이 아는 노래 장범준의 <벚꽃엔딩>이었다.

선생님이 일러준 코드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내 손은 또 버벅댔다. 분명 내 수준에 맞춘 가장 쉬운 코드일 텐데도 말이다. 특히나 세 번째 마디에서 네 번째 마디로 넘어갈 때는 프렛 이동 폭이 커서, 그게 내게는 마치 도버 해협을 횡단하는 느낌이랄까. 선생님은 옆에서 계속 “잽싸게” “재빠르게”를 외치지만 마음과 달리 내 손은 굼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리듬.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속 포의 오랜 숙적이 계단이라면, 내게는 리듬이다. 헉헉거리며 열심히 따라가보려 하지만 기타를 배운 지 1년 반이 다 되도록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하다. 선생님에 따르면 나는 리듬감이 매우 없는 편이다. 노래를 부를 땐 큰 문제가 없는데 기타만 잡으면 그렇게 된다. 기타를 칠 때 “리듬을 타보라”는 선생님 말은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나 지금 속으로 리듬 타고 있는데?’ 마음과 손은 늘 따로 논다.

이번 곡에서는 스윙 리듬을 배우고 있다. 스트레이트로 칠 때도 박자를 놓치기 일쑤인데 스윙이라니… 스윙이라니! 레슨 시간 내내 열심히 따라 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미간은 점점 찌푸려지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는다. 짜증이 밀려오지만 억누르고 계속 손을 움직여 본다.

한참을 혼자 뚱땅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타선생님이 말했다. “그래 그거 맞아요!” 응? 맞다고? 뭐지? 나 뭐한 거지?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어떻게든 그 느낌을 찾아 다시 같은 리듬을 내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 리듬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다시 선생님이 스트레이트 리듬과 스윙 리듬을 번갈아 쳐보며 차이를 느껴보라고 했다. 시범을 귀로 들을 땐 알겠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그 둘 중간 어디쯤에서 갇힌 듯하다. 스트레이트 리듬으로 치다 스윙 리듬으로 바꿔 보라는 선생님 말에는 아예 리듬 자체를 찾지 못하고 마치 렉에 걸린 컴퓨터처럼 버벅댔다.

1년 반 동안 내가 지금까지 배운 곡 중 <벚꽃엔딩>은 왼손은 가장 넓게 프렛을 오가야 하고, 오른손은 스윙 리듬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왼손과 오른손이 합쳐지면 둘 다 망하는 나다.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기타 초보가 많이 도전한다는 이 곡이 내겐 너무나 큰 미션이 되었다.

다행히 이런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닌 듯하다. 남들 다 쉽다고 해도 어렵다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었다. 레슨이 끝난 뒤 ‘벚꽃엔딩 기타 코드’라고 검색했더니, 누군가 말했다. “내년에도 벚꽃은 피니까요.” 맞다, 벚꽃은 내년에도 핀다. 그리고 내후년에도….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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