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열풍 분다고 벌써 춤추면 안된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극본 조성희 연출 정대윤)에서 '예뻤다'는 외모일까, 마음일까.

'그녀는 예뻤다' 열풍이 거세다. 때마침 발생한 '결방 사태'가 열풍을 부채질한 꼴이지만, 근래 이토록 뜨거웠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없었다.

배우들의 열연 덕이다. '킬미 힐미' 이후 재회한 황정음, 박서준은 호흡이 여전하다. 황정음의 열정은 지칠 줄 모르고, 박서준은 이번에도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골라 막힘이 없다.

고준희는 평소의 세련된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 든 역할이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기분이 드는 건 오로지 연기하는 배우가 고준희인 탓이다. 최시원은 등장할 때마다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캐릭터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연기에 고스란히 묻혀 기대 이상이란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극본은 분발해야만 한다. '그녀는 예뻤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우정과 사랑이 얽힌 상투적인 사각관계 설정은 기발한 에피소드로 극복해야 하는데, 다뤄지는 에피소드는 썩 신선한 편이 못 된다. 치밀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주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녀는 예뻤다'는 이미 결정적인 지점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여주인공 혜진(황정음)이 예뻐진 순간이다. 왜 혜진이 외모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는지 제작진은 뚜렷한 의미를 제시하지 못했다.

잡지사를 그만둔 혜진이 돌아가기로 결심한 건 고생하는 아버지를 보며 느낀 감정 탓이지만, 굳이 외모까지 가꾸고 돌아간 이유는 설명이 부족했다.

먹을 쌀이 떨어졌다던 혜진은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데만 40만 원을 썼는데, 그동안 알뜰살뜰 살았던 혜진이 갑자기 자신을 가꾸는 데 돈을 쏟아 붓는 모습은 다소 어색했다. "지금까지는 왜 그러고 다녔냐?"는 동료의 물음에 "학자금 대출 갚느라"고 답했으나 왠지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대사였다.

혜진의 외모가 달라진 이유에 집착하는 건 바로 이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예뻤다'가 예쁜 외모인 건지, 예쁜 마음인 건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주제의 가치가 확연히 달라진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주제다. 혜진의 외모 변화 후 성준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따라 이 주제는 갈라진다.

혜진을 알아보지 못하는 첫사랑 성준이 예뻐진 혜진의 외모에 끌린 거라면 단순히 '여주인공의 외모가 예뻐지자 첫사랑을 찾았다'는 별 의미 없는 주제만 남게 된다. 반면 성준이 혜진의 외모가 아닌 어릴 적부터 달라지지 않았던 순수한 마음에 자석처럼 끌린 거였다면 이야기는 더 복잡하면서도 풍성해질 수 있다. 무엇이 '사랑의 가치'인지 반문하는 계기까지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어긋난 모양새다. 혜진의 외모 변화가 어물쩍 넘어간 것은 물론이고, 이상하게도 성준 역시 혜진의 변화가 있기 전부터 이미 그녀에게 점차 끌리는 감정으로 변해버렸다.

변화가 맞물리지 못했다. 성준이 혜진의 외모와 마음 중 어떤 것을 통해 첫사랑임을 자각하는지가 관건이었는데, 중요한 시점을 놓친 듯하다. 그냥 이대로 흘러간다면 혜진의 외모 변화는 '그녀는 예뻤다'의 큰 이야기 줄기에 소모적인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아직 7회 가량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 희망이다. 제작진은 남은 분량에서 이야기를 좀 더 완성도 있게 매듭지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하루 아침에 예뻐지고 사랑을 얻었다는 뻔한 결말을 기다리는 건 아닐 게 분명하다.

'그녀는 예뻤다' 열풍이 거세다. 지금의 열풍 때문이라도 완성도로 시청자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용두사미 드라마를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아직 열풍에 춤출 때는 아니다.

[사진 = MBC 방송 화면-마이데일리 사진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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