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한상숙 기자] *김시진 감독의 치명적매력, 대승적 리더십[한상숙의 덕아웃]
"한 기자 왔어? 여기 앉아서 이것 좀 먹어봐요"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어김없이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서너 종류의 음료수 중 입맛에 맞는 것을 꺼내준 뒤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김 감독의 방은 언제나 기자들로 북적거린다. 그의 팀이 내내 하위권을 맴도는 성적이었지만 기자들은 늘 그의 방을 가장 먼저 찾는다. 김 감독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김 감독과는 선수들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도, 가벼운 농담도, 세상 사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년 하위팀인 넥센을 제쳐두지 못한다.
최근 김 감독의 '상생(相生) 리더십'이 화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투수코치를 맡고 있는 김 감독이 타 구단 투수들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하면서 부터였다. 김 감독이 양현종(KIA)에게 컷 패스트볼을 전수했다는 일은 유명한 일화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동지'가 아닌 '적'으로 만날 사이지만 김 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선수들이 배우고자 한다면 가르쳐줘야 하는 게 당연한 입장이다. 같은 야구인이고, 감독과 선수를 떠나 선후배 관계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주고 싶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
그리고 이어지는 김 감독의 말은 그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김 감독은 "어느 팀의 누구라도 야구에 관한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모두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시즌 중이라도?"라고 묻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시즌 중간이라도 타 팀 선수가 '감독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한다면 언제든 도와줄 수 있다.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하지 않나?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뺍니까?"라며 껄껄 웃었다.
김 감독은 그렇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한다. 수 없이 팀의 이름이 바뀌는 동안 동고동락한 선수들과는 더없이 친근한 사이로 남았다. 그래서 태평양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정민태 투수코치와 이숭용에게 김 감독은 유독 특별한 존재다.
정 코치는 김 감독을 '친형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정 코치는 "코치 시절 감독님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서 상의할 수 있는 친형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가끔 원정 경기에서 선수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감독님이다. 선수들과 사이가 좋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숭용에게 김 감독은 조금 더 남다르다. 이숭용은 "지난 1995년 롯데 공필성 선배가 김용희 감독님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당시 (공)필성선배가 '우리는 이길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반문했고 필성선배는 '선수들이 감독을 위해 야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신인이었던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10년이 흐른 후에 그 말 뜻을 깨닫게 됐다. 팀 해체 후 2008년 김 감독님이 다시 오셨을 때 감독실을 찾아가 '1년만 더 주장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선수단을 이끌어 감독님과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런 분과 야구를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감독이야말로 남자의 마음을 움직인 진정한 남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해준 분"이라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1일 부산에서 KIA와 연습경기를 치른 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최근 시술한 임플란트에 문제가 생겨서였다. 2일 오전 치과 진료를 받은 후 곧바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다. 통화를 이어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김 감독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전화 통화와 동시에 김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한 후 그는 "제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주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나이와 지위를 가리지 않는 김 감독의 겸손함은 주변인들이 가장 먼저 꼽는 그의 장점이다.
"지도자는 선생님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선수들이 배우고자 한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전해줄 수 있다. 모두 내 선수들이고, 동료들이다." 광저우 금메달은 그 남자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김시진의 넥센'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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