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경민 기자] *톱스타, 영화에서 드라마로 회귀하는 까닭은?
2005년 쯤 일까? 한 드라마 PD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드라마와 영화는 분명한 격차가 있어요. 일단 드라마는 재사용 가능한 저장매체를 쓰죠. 하지만 영화는 한번 찍으면 끝인 필름 이란 걸 씁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돈이고, 영화는 그만한 제반 상황에서 촬영이 가능하죠. 드라마와 영화는 분명한 격차가 있어요”
그렇다. 이처럼 제작자는 물론, 배우들 사이에서도 드라마와 영화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했다. 특히 ‘실미도’를 기점으로 한국 영화 관객 1천만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성기를 맞은 한국 영화의 위치는 그 어떤 위치보다 확고 했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드라마로 데뷔해 최종 종착지는 ‘영화’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당시 만난 다수의 배우들이 ‘영화’에 발을 들이면 다시 ‘드라마’로 유턴하는 경우 또한 보기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8년 말 부터일까?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 많은 톱스타들이 영화에서 드라마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요즘 브라운관만 봐도 SBS ‘시크릿가든’의 하지원을 비롯해 KBS 2TV ‘도망자 플랜B’의 이나영, 종영한 KBS 2TV '아이리스' 이병헌 등의 수 많은 톱스타들이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비치고 있다.
이제는 배우들에게 드라마는 영화로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닌 ‘종착지’로 비춰질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역전현상은 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아닌 영화계 전반의 불경기 때문이라는데서 문제가 크다.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면 듣는 얘기는 한결 같다. “작품은 해야 하는데, 투자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개봉 편수 또한 한국 영화 전성기인 2000년 중반과 비교해 당시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편수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덩치는 비교할 수가 없다.
또, 지난해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모으는가 하면, 올해도 ‘아저씨’와 ‘의형제’가 600만을 돌파하는 등, 한국 영화는 전성기와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내실은 과거와 비교해 부실하기 그지 없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닥치자 그 타격을 바로 입은 것은 영화계다.
당시 투자부진을 이유로 수 많은 영화가 제작 중단되거나 기획 단계에서 멈춰섰다. 이 같은 경제 불황이후 영화의 큰 손, 즉 펀드나 창투사 등의 소극적인 투자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한국 영화의 덩치 또한 작아진 것이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의 대다수는 흥행대비 손익분기점이 120만 명에서 150만 명 선이다. 이렇게 되면 불과 제작비는 30억원 내외가 된다. 심지어 최근 개봉한 한 영화는 간접광고(PPL)를 받고 개봉 전에 영화 음원 수익으로 손익분기점이 10만 명인 경우까지 있다.
이처럼 제작비가 줄어들면 영화 현장에는 어떤 사태가 생길까? 당장 배우들에게는 출연료의 인하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촬영 회차를 줄이기 때문에 일정에도 문제가 생긴다. 과거 영화들이 50회차 이상을 해온 반면 요즘 영화들은 30회차 내외로 촬영을 끝낸다. 그야 말로 ‘드라마’처럼 촬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 비해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부담은 크다. 드라마의 경우 승패를 떠나 방영기간 지속적으로 대중 매체에 얼굴을 비치기 때문에 광고 등의 부가 수입 또한 기대할 수 있다.
과거 영화의 이미지를 광고로 차용한 경우가 많았다지만 현 실태에서 광고계의 최대어로 꼽히는 이승기의 경우 단 한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없다.
또, 영화의 경우 흥행에 실패할 경우 짧게는 2주, 길어도 한 달이면 개봉관에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배우에게 남는 것은 ‘흥행 참패’, ‘영화에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꼬리표뿐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출연 분량이 확보되는 동안 대중에게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는 드라마가 그 부담이 덜할 수 밖에 없다.
한 톱스타의 매니저는 “출연료가 예전에 비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제반 사항도 예전에 비해 질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현장의 얘기를 털어 놓았다.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 들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의 경우 ‘러닝 개런티’ 같은 방식으로 흥행에 따라 출연료가 높아질 수도 있다지만 스태프들은 그 비용을 못 받는 경우조차 허다하다.
상황이 이렇자 장진 감독은 자신의 작품인 ‘퀴즈왕’에서 조명, 음향 등의 스태프들에게 각자 지분을 투자하는 식의 색다른 제작방식을 택했다. 그는 “영화가 잘 되면 스태프들에게 고루 배분을 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시스템이다”고 자구책에 대한 설명까지 전하면서 한국 영화의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영화계는 영광의 시기는 지났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 한 배우의 말처럼 한국 영화의 위상은 전성기에 비해 그 힘을 잃었다. 장동건, 송강호, 설경구, 원빈, 강동원처럼 확고한 위상을 갖춘 배우들은 영화계에서 살아 남아 지속적으로 영화를 찍으며 힘을 발휘 하고 있지만, 다수의 배우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병행하고 있다.
심지어 ‘이층의 악당’의 김혜수와 ‘페스티발’의 심혜진, ‘두여자’의 신은경은 드라마 출연 일정으로 인해 일체 영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상태다. 과거 영화 홍보라면 다른 일정을 미뤄놓고 진행한 것과는 다른 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배우나 감독이나 영화 찍는다고 목에 힘을 주며 드라마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조소를 보내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 같은 사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영화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사진 = 이나영-이병헌-하지원]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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