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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영방송 NHK, '한국 아이돌 열풍' 집중 조명
"오늘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서 카라 노래 불렀어요. 요즘 우리학교에서는 남자애들조차 쉬는 시간에 엉덩이 춤 따라하고 연습해요. "
이말은 도쿄 신주쿠구 중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의 말이다. 그런가하면 도쿄도내 한 공원에서는 옷 컨셉을 맞춰 입고 나온 한 여자 아이 무리가 소녀시대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K-POP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듯하다. 집에서 유튜브를 통해 한국 아이돌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노래방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며 일부는 한국 아이돌의 춤을 춘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본 내 K-POP의 현주소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 김치와 북한을 떠올리며 은근히 차별했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환경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아티스트라면 보아나 동방신기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의 K-POP열풍은 놀라울 정도다. 올해 신인가수가 발매한 음반의 판매 순위는 현재까지 소녀시대, 카라가 1,2,3위를 모두 독점했다. 올해 일본에서 활약한 신인가수 중 가장 임팩트가 강하다.
2004년,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 시리즈로 시작된 한류 열기에 이어, ‘K-POP’의 또 다른 열풍에 일본 언론도 후끈 달아올랐다. 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공격적인 활동을 하는 한국 아이돌의 활약은, 일본 아티스트들도 해외 진출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 섞인 이야기 또한 대두되고 있다.
한국 아티스트들의 맹활약에 대해 같은 일본 아티스트들조차, ‘우리는 왜 저렇게 못하는가?’라고 말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관련업계 또한 일본연예 산업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성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같은 일련의 자극으로, 최근 AKB48 등을 위시한 일본 아티스트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K-POP붐이 마침내 일본의 콘텐츠 산업의 움직임마저 바꾸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K-POP 붐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프로그램이 TV로 방송됐다. 그것도 일본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공영방송 NHK에서 말이다.
16일 저녁, NHK의 ‘클로즈업 현대’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아이돌 열풍과 그 이면’이라는 제목으로 30분간 특집방송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NHK에서는 이례적으로 몇 시간전부터 예고를 한 뒤 방송을 했다.
내용은 K-POP에 대한 다각도적 분석, 한일 음악시장 비교, 그리고 미래의 일본 콘텐츠 시장의 가능성 등, 일본연예 산업에 대한 비젼을 점검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인지 K-POP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의 활동과 전문가의 심층적인 분석을 접목시켜 총체적으로 다뤘다.
한국음악의 콘텐츠는 어떻게 제작되고 있는가. 기획단계부터 제작, 판매, 해외진출 등, 이 모든 과정들이 철저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분석했다. 결국 기획부터 국내외 진출에 대한 홍보까지, 하나의 ‘상품’으로 치밀하게 만들어 놓고 그 프로그램에 따라 착착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이 방송은 일본 내 소녀시대 춤의 '완전 카피(完コピー, 간 코피-)' 열풍을 들었다. 소녀시대 춤을 그대로 카피해서 따라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데, 음악 콘텐츠 제작자 측은 기획단계에서 이것을 유도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과 누구나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안무 구성, 바로 이게 아시아 시장을 통일할 수 있는, 궁극적인 스타일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또한 이 SM 관계자는 이 같이 말했다.
"우리는 연예기획사이지만, 일반 회사가 R&D를 하듯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해 수익의 많은 부분을 다시 재투자하고 있어요"
한국 3대 대형 기획사 중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는 3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들여 세계 각국에서 오디션을 열고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무려 10만여 명이 이 오디션에 응모했고, 불과 몇 명만이 연습생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또한 들어온 연습생에게도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엄청난 양의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연습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연습실로 직행, 매일 5시간 이상의 트레이닝을 받는다는 것. 이런 연습이 길게는 7년까지도 지속된다고 한다.
이 때 배우는 것은 노래, 연기, 안무 외에도 무대 매너, 아이돌 매너 등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어학이 필수화됐다. 진출국가가 예상되거나 확정되면, 바로 그 나라 언어 수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편,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자, 개인 레슨을 받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가 춤과 노래에 재능을 보이면, 부모가 직접 나서서 아이돌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으 시킨다는 것.
이 같은 환경에서 선발된 자원들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이 방송에 특별 초대된 음악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 씨는, J-pop이 아시아를 석권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고, 이제는 K-pop이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다며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는 CD시장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일본시장보다 규모가 훨씬 작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죠. 일본이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한 권리 의식이 적은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일본의 경우, (해적판이 돌아다닐까봐) 저작권 문제 등으로 해외 진출을 꺼려하는 데 반해, 한국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 의식이 적습니다. 또한 한국은 CD를 프로모션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쇼비지니스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 합니다. 그래서 CD의 불법 복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죠. 이런 의식구조의 차이가 이같은 결과를 낳은 겁니다”
요컨대, 한국은 국내 환경적 제약으로 해외 진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일본은 내수 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에 굳이 해외로 진출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음악 저널리스트가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IMF이후 한국이 IT강국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향해 정진한 것이 현재의 K-POP붐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IMF 이후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전략적인 IT강국 주창에 따라 IT분야에 수많은 역량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때 양성된 IT세대들이 한국 사회에서 주역이 된 지금, IT분야에서의 약진이 K-pop붐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은 컨텐츠 홍보나 프로모션을 할 때,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이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대부분의 작곡가들도 컴퓨터로 음악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실제로,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소녀시대를 미리 접한 일본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녀시대 쇼케이스 현장에는 무려 2만 2천여 명이 몰려들었다. 신인 쇼케이스로는 전례가 없는 숫자다.
또한 이 방송에서는 K-POP붐의 강세 비결은, 디지털 시대에 맞춰 예능 프로덕션의 기업화와, 콘텐츠를 가전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산업의 한 분야로서 인정하는 국가 전략에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주도하에서, 음악 콘텐츠가 패션, 가전 등 다른 분야와 융합돼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량이 커질수록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져 기존 한국기업의 제품 홍보가 되고, 판매도 증가해 결국에는 국가 브랜드를 높인다는 한 한국인의 말도 소개했다.
일본 또한 한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정부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제산업성 산하에 ‘쿨 재팬’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일본 콘텐츠를 경제분야 쪽에 연계시킨다는 것.
이 부서 관계자는 "J-pop, 만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 분야가 경제 분야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문화 콘텐츠는 일본 경제 성장 전략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또다른 게스트로 참석한 나카무라 이치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콘텐츠 개발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재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분산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K-POP과 같은 문화 콘텐츠와 가전, 패션 등 다른 분야의 융합이 매우 전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전략적이지 못하며 너무 국내지향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대중 문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풍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고, 창조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것이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음악 저널리스트인 후루야 씨는 한국과 일본의 음악 콘텐츠의 차이를 이같이 분석했다.
“한국은 단거리 선수입니다. 유행을 만들어 놓으면 그 흐름을 타는 것이 매우 능숙합니다. 그 때 그 때 그 유행에 맞는 적절한 상품들을 내세우죠”
즉, 호흡이 짧을 수는 있으나 흐름에 대응하는 단기 대응 전략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장거리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문화 자체의 콘텐츠가 뛰어난 것이 많고, 그 깊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특별히 홍보하지 않아도 일본 콘텐츠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수요도 많았죠. 그러나 과거와 같이 노력 안해도 일본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어서 "한국은 해외 유학파들이 많습니다. 국제 감각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해외 전략을 세우기가 쉽습니다. 일본도 이런 인재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사회자가 '앞으로 일본이 한국과 같은 방법을 접목해야 하느냐'고 묻자, 나카무라 교수가 마무리 멘트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닙니다. 한국의 콘텐츠는 모든 과정이 ‘상품’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 집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후루야 씨의 ‘일본은 장거리 선수’라는 말에 크게 동감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본 내 풍부한, 그리고 창조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일본 콘텐츠를 잘 살려, 이것을 전체적으로 프로듀스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 국내외에 전파하는 효과적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날 NHK 의 k-pop 특집방송은,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는 일본의 국제 경쟁력에 대한 위기의식과 한국의 약진에 대한 부러움이 섞인 자성론도 짙게 깔려 있었다.
한국의 지향적인 해외진출 전략, 수년간에 걸쳐 철저하게 다듬어진 문화콘텐츠, 눈에 띄게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국제경쟁력에 대해 일본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 문화 콘텐츠는 모두 내수 중심으로 그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 마케팅은 '알아서 찾아와 사가는' 과거의존형, 즉 '잘나가던 향수'에 아직까지도 젖어 있는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일본 내 시장에 안주해 'made in japan'이라는 브랜드가 점점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는, 이른바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갈라파고스화: 세계 흐름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표준에 고립되어 결국 세계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를 일컬을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
이지호 기자
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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