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일본배우들은 대중앞에서 희노애락을 표현하면 안된다?
12월 4일 아침, 일본신문에 배우 마츠다이라 겐(松平健.57세)에 대한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내용은 지난 11월 15일 아침에 목을 매 자살을 한 부인 마츠모토 유리(松本友里.42세)에 대한 고별식(장례식)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11월 16일자 스포츠신문과 TV와이드쇼는 온통 이들 부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마츠다이라 겐의 행보에 대해서 모두들 주시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츠다이라는 그당시 '규슈 하카다' 장기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30일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자살한 처를 두고 그대로 공연을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일체 중단하고 장례식을 치룰 것인지, 언론과 일본인 모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역시 마츠다이라는 일본인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진정한 의미에서 내공이 깊은 배우였다. 그는 15일 아침 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도 11시, 오후 4시에 예정된 공연을 모두 태연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곧장 비행기로 도쿄에 올라와 싸늘하게 시신으로 변한 부인과 대면한 후, 다시 그날 밤 마지막 비행기로 이튿날 공연을 위해 규슈로 되돌아갔다.
16일 역시 예정대로 2회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저녁에 다시 도쿄행. 마침 17일은 공연이 없는 날이어서 이날 온종일 부인 곁에 있다가 다시 밤비행기로 규슈에 갔다.
결국 마츠다이라는 11월 30일까지 예정된 공연을 무사히 모두 마쳤다. 그리고 12월 3일, 마침내 미뤘던 부인의 장례식을 치룬 것이다.
이같은 마츠다이라의 행보에 그동안 일본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일본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는 역시 '연기자 답다는 것'. 극한 슬픔속에서도 오로지 연기자혼(役者魂)으로 예정된 공연을 무사히 해냈다고 극찬하는 매체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그는, 부인의 자살전 공연과 다름없이 1부에는 일본전통극 '추신구라', 2부에는 가요와 춤으로 짜여진 공연을 아무런 실수없이 해냈다. 하지만 관객들의 전언에 의하면, 신문에 보도된대로 마냥 태연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1부 연극중에서 주인공 무사가 부인과 이별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그렁그렁 고여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관객들이 덩달아 흐느꼈다는 것.
부인이 자살한 11월 15일 이후부터 공연이 끝나는 30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울면서 공연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츠다이라는, 2부의 쇼 공연에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초연하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히트곡 를 열창했다고 한다.
는 2004년, 무대공연 말미에 마츠다이라가 금박을 박은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경쾌한 리듬으로 노래와 춤을 추는 것.
원래 마츠다이라는 사극의 정통 연기자로, 가 대히트하기 전까지는 중후한 이미지의 인기배우였다.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이 가 히트하자 한순간에 그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사극에서는 언제나 사무라이 쇼군(장군)으로 분해, 느릿느릿한 준엄한 목소리로 위엄있게 '명령'만 하던 배우가, 갑자기 무대위에서 다소 천박하달 수 있는 금박이 옷까지 입고 펄쩍펄쩍 삼바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처음엔 생소하다 못해 거부감까지 느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소함은 곧 인기로 변했다. CD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물론, 그해 오리콘 챠트 3위, 일본가요 대상, 연말 NHK가요홍백전에도 출전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덕분에 다카라츠카 톱배우였던 다이치 마오와의 그해 이혼소동도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번에 자살한 두번째 부인 마츠모토 유리와는 이듬해인 2005년에 재혼했다. 마츠모토 모녀가 그의 삼바공연을 보러온 게 계기가 돼 결혼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14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이 부부는 4살된 아들을 남겨두고 마츠모토가 자살하는 바람에,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 자살 이유는 출산후 생긴 우울증과 패닉장애, 불면증 때문.
그런데 부인인 마츠모토의 자살보다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마츠다이라의 행보였다. 많은 언론들이 '연기자혼이 대단한 배우'라고 극찬하는 순간에도, 그 한편에서는 '저 사람 인간 맞아'하는 비아냥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 15일,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몇 시간도 채 안돼 장시간 무대에 올라, 그것도 2부에는 노래와 춤을 추는 공연을 태연하게 진행한 것에 대해, 냉정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인들도 저으기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그런 놀람을 그저 한마디로 '연기자혼(役者魂)이라고 미화시켜 표현했다. 대중과 오래전부터 약속한 공연을 펑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 자제, 통제해 연기자혼을 발휘, 프로답게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인들의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배우로서 이미 예정된 공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마쳐야 된다는 것. 물론 부인이 자살한 사건에 대해서는 대단히 애석한 일이지만, 배우 한사람의 사생활 때문에 11/15-11/30일까지 예약한 다수의 관객들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 배우의 길이고 또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
반면, 마츠다이라의 행동이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일본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제아무리 직업이 배우라지만, 배우 이전에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 더구나 자신의 아들을 낳아준 부인인데, 어떻게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태연히 몇 시간도 안돼 무대에 올라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직설적인 독설로 유명하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3번째 부인이었던 데뷔부인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비난했다.
'혹시 그(마츠다이라)에게 부인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부인과 자식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 자살한 부인은 늘 그를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또 항간의 소문처럼 그는 여자에 대한 관심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재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따라서 마츠모토부인은 그에게 희생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데뷔 부인의 독설에 의외로 많은 일본인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동감'임을 나타내는 댓글들이 무수히 따라 붙었다.
이렇듯 자살한 그의 부인을 두고 예정된 공연을 강행한 마츠다이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2001년, 도쿄 신주쿠 신오오쿠보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한 뒤 전차에 깔려 사망한 한국인 유학생 이 수현씨가 있었다. 그 때 한일양국에서 이 수현씨에 대해 '의인'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의 희생을 기렸다.
그 때 참으로 의아했던 것은, 고 이 수현씨와 함께 취객을 구하다 역시 희생된 일본인 카메라 맨 세키네씨였다. 어쩐 일인지 그때 한일 양국 언론은 고 이 수현씨 혼자가 아닌 일본인과 함께 똑같이 취객을 구하다가 희생되었는데도 유독 이 수현씨만 크게 부각됐다.
내가 생소하다고 느꼈던 것은 고 세키네씨의 어머니 반응이었다. 고 이 수현씨 부모님은 일본에 와 아들을 잃은 슬픔에 대성통곡을 하는데, 세키네씨의 어머니는 타인의 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자신을 취재하러 몰려드는 기자들에게 일일히 고개를 숙이며 '자식일로 폐를 끼치게 돼서 정말 미안합니다'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 ?좋떱홱?
나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이씨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놓아 울어도 시원찮을텐데, 오히려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니,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오해는 얼마 안 가 이내 풀렸다. 사건 후, 세키네 어머니를 취재갔던 일본기자에게 내가 힐난하듯, '그의 어머니는 눈물도 없는가? 어쩌면 그렇게 냉정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그 기자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취재후기를 들려줬다.
"일본인들은 타인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가장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엊그제 취재후기를 쓰기 위해 세키네씨 집에 찾아 갔었다. 거기서 나는 혼자 아들의 영정 앞에서 흐느껴 우는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찾아왔다는 인기척을 내면 그나마 그의 어머니가 마음대로 울지 못할까봐, 조용히 나도 그 어머니 뒤에서 한참을 함께 울었다. 이게 우리 일본인들의 정서다."
그럼 마츠다이라는 자살한 부인을 위해 얼마나 울었을까? 만약 한국배우가 마츠다이라와 똑같은 경우가 됐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할까? 또 우리 한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재순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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