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성남 일화의 중앙 수비수 사샤 오그네노브스키(31·호주)는 K리그 이적 후 인생의 꽃을 만개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2005년까지만 해도 사샤는 멜버른시 북부를 연고지로 하는 지역리그에서 뛰던 세미프로 선수였으나 호주 A리그 퀸즐랜드 로어에 입단하며 신태용 감독과의 인연을 맺었고, 4년 뒤에는 한국으로 건너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한 2010 최고 선수의 영예를 안기에 이르렀다. 5년 만에 연봉은 15배 가까이 올랐고, 아시아 전역은 물론 세계 축구계에도 이름을 알리는 선수가 됐다.
사샤의 성공이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은 아니다. A리그 시절에도 사샤는 터프한 수비와 때맞춰 가세하는 공격력으로 리그 팬들과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축구 선수로서의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였다. 사샤와 함께 A리그에서 활약하던 송진형(23·투르FC)은 "사샤가 K리그에 가면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나는 2009년 초 애들레이드 하인마쉬 스타디움에서 사샤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성남과의 계약이 마무리 되려던 시점이었고 사샤는 한국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인터뷰 후에는 구단 트레이너들과의 환담도 이어졌는데, 그들은 "호주에 사샤 같은 숨어있는 보물들이 많으니 잘 찾아보면 더 좋은 선수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배경을 호주의 탄탄한 지역리그로 꼽았다.
호주는 축구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는 나라다. K리그의 실제적인 경쟁자는 프로야구 하나지만, 호주 A리그는 호주식 축구 AFL, 럭비리그, 크리켓과 경쟁을 해야 한다. 게다가 A리그는 지상파 TV 중계도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 시청자들이 접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호주 축구의 탄탄한 저변이다. 축구의 상대적 인기가 이토록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각 주에는 1, 2, 3부의 지역 세미프로 혹은 아마추어리그가 활성화 돼 있다. 각 팀들은 크고 작은 홈구장을 갖추고 있고 맥주, 음료, 핫도그 등을 파는 카페와 구단의 역사를 간직한 갤러리도 보유하고 있다. 이 팀들은 적게는 200명부터 5,000명까지 관중을 불어모아 수익을 창출한다.
규모가 되는 팀들은 7세부터 16세 이하의 유스팀을 보유하고 있어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어 준다. 이들이 성인이 되면 세미프로 계약 혹은 당일 출전 수당을 받는 ‘Pay as you play’ 계약을 체결해 생업에 종사하며 훈련과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A리그로 진출해 전업 프로 선수가 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현재 A리그에서 활동하는 호주 출신 선수들 상당수는 이렇게 지역 리그를 통해 축구를 익히고 프로 수준까지 성장한 선수들이다. 프로에 진출할 수 없는 선수는 자신의 직업을 갖고 생활하며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지역리그에서 뛰며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활동한다.
축구의 국내 인기가 프로 스포츠 서열 4위에 불과한 호주에 저러한 현실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승강제가 도입되기 어려운 호주 축구의 현실에서 지역리그는 축구 발전을 위한 든든한 뿌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K3가 호주 지역리그의 역할을 할 무대로 보이지만 엘리트 체육의 견고한 시스템과 갖가지 사회적 제약이 이를 가로 막고 있다. K리그의 태생적인 한계를 감안하면 승강제의 도입이 생각처럼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판을 새로 짜지 않는 한 승강제는 아예 이룰 수 없는 꿈인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유럽식 모델을 따르는 것보다는 호주축구의 실제적인 예를 참고해볼 필요도 있다.
조건호 칼럼니스트는 스포츠 전문 통역·번역가로 활동중이며 영국 포츠머스 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조건호 칼럼 니스트는 2005년 영문 잡지 SEOUL서 기자를 시작한 후 그 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컬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또한 2006년 입식격투기 K1-KHAN 서울 대회 통역을 시작한 후 SBS방송 '스포츠 빅이벤트' 리포터, 2007 FIFA 청소년월드컵 한국어 웹사이트 번역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 2007년 출판된 'FIFA의 은밀한 거래' 한국어판 번역 등 스포츠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성남 일화서 활약하고 있는 호주 출신 수비수 사샤]
김종국 기자 calci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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