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한상숙 기자] "헉∼ 헉∼"
마스코트 탈을 쓴지 정확히 45초가 지나자 가쁜 숨을 참을 수 없었다. 꽉 막힌 탈 속에서 되돌아오는 것은 뜨거운 입김 뿐. 몸은 뒤뚱뒤뚱 땀은 삐질삐질. 결국 탈을 쓴 지 3분만에 나도 모르게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이내 돌아온 사부님의 냉정한 한 마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지난 16일 안양 실내체육관에서 프로농구 안양 한국인삼공사의 마스코트 '홍이장군' 일일 체험에 나섰다. 이유는 거창했다. 학창시절부터 마스코트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기 때문. 하지만 아쉽게도 마스코트 탈을 쓸 수 있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기자 체험'을 빌미로 오랜 숙원을 풀 기회를 만들었다. 귀여운 브이(V)자를 그리며 꼬마들과 사진을 찍고, 남자 관중들과 악수하는 상상을 하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앙증맞은 모자와 멋진 망토까지…제법 '홍이장군' 같죠?
농구장과 야구장, 배구장 등의 마스코트는 대부분 동일한 사람들이 맡는다. 시즌과 날짜가 겹치지 않기 때문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블레오'가 프로농구 인삼공사의 '홍이장군'이 되는 식이다.
오후 7시 경기가 있는 날에는 4시까지 구장에 도착해 리허설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나를 맞아준 것은 앙증맞은 모자를 쓴 '홍이장군' 의상.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손을 뻗자 구단 관계자가 고개를 흔든다. "땀 냄새가 심할 거예요. 심호흡 하시고 쓰셔야 해요." 수 개월 동안 땀에 절은 마스코트 의상의 악취는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아, 그럼 잠시 후에 입어볼까요?" 일단 한 걸음 물러섰다.
이어 이벤트팀과 경호팀 등 경기를 돕는 모든 스태프가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 나에게는 협찬사 광고판 흔들기와 박수 유도하기, 경기 전 농구 게임의 도우미 역할이 주어졌다.
곧 '홍이장군'으로 변신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 옷을 입는 순간 나는 없다. 완벽한 홍이장군으로 변신하자.' 수 십번도 더 되뇌였던 생각이었지만 막상 옷을 입을 시간이 다가오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10년도 넘게 그려왔던 꿈이 아니던가!
붉은색 의상을 입고 뒤에 망토까지 달아주니 제법 폼이 난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탈까지 쓰고 나니 완벽한 '홍이장군'으로 변신 완료! 다행히 냄새는 심하지 않았다. 여기자가 방문한다며 탈취제를 준비해둔 이벤트팀의 센스 덕분이었다.
스폰지로 만들어진 커다란 신발을 신고 뒤뚱뒤뚱 관중들을 향해 걸어나갔다. '홍이장군'의 두 눈에는 마치 파리 눈처럼 그물이 쳐져있다. 신발은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처럼 헐떡인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숨이 턱턱 막혔다. '감옥에 갇힌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이 절로 든다.
경기장으로 들어서 입장한 관중들과 악수를 나눴다. 나를 보고, 아니 '홍이장군'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피로가 말끔히 씻긴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관중들에게는 평소 엄두도 내지 못할 '깜찍 애교'를 맘껏 발산했다. 어느새 내 양손은 '홍이장군'의 볼을 감싸고 있었다. 익명이 보장되는 탈 안에 있으니 쑥스러움도 사라졌다.
경기 30분 전, 입구에서 진행되는 농구 게임 현장으로 파견됐다. 골대에 농구공을 넣으면 선수들의 사인볼을 주는 게임이었다. 나의 임무는 참여자들 모으기. 경기장으로 들어서려는 사람들을 붙잡고 줄을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는 SOS 신호가 왔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달려가 옷을 모두 벗고 볼일을 무사히(?) 마친 후 다시 처음부터 옷을 입었다. "경기 전엔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던 사부님의 말이 떠올랐다.
◇코끼리 코 7바퀴에 쓰러지다
전반전 종료 후 맞은 '수능올림픽 이벤트'에서의 임무는 '광고판 두 손으로 들고 서 있기'. 버저비터가 울림과 동시에 뛰어나가 광고판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10초도 지나지 않아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두꺼운 마스코트 의상 탓에 팔은 엉거주춤한 상태였고, 땀은 여전히 비 오듯 쏟아졌다. 점점 내려오는 팔을 이를 악물고 들어 올렸다.
경기장 한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탈을 벗고보니 화장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다. 가져다준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운동선수들이 경기 도중 물이 아닌 이온음료를 마시는 이유를 확실히 깨닫게 됐다. 갈증이 해소되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땀이 차갑게 식은 탈을 다시 쓰는 것은 최대 고역이었다. 비에 젖은 신발을 벗고 난로앞에서 불을 쬔 뒤 축축한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는 느낌? 다시 머리를 탈 속에 구겨넣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초등학생들과 코끼리 코를 한 채 10바퀴를 돈 후 자유투를 넣는 게임에 투입됐다. 구역 대표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경기에 나섰지만, 7바퀴도 채 돌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꼴찌로 달려가 자유투 라인에 섰지만 골대도 안 보이는데 공이 들어갈 리 없었다.
코트 바로 앞에서 경기를 지켜본 것은 큰 행운이었다. 관중석 상단에 위치한 기자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선수들의 표정과 몸싸움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윽고 경기가 끝났고, 멀게만 느껴졌던 '홍이장군'과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탈의실에 들어가 보니 옷은 흠뻑 젖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 상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간이 샤워실의 자리는 이벤트팀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축축한 옷 위에 두 겹의 옷을 더 껴입고 경기장을 나섰다.
머리는 띵하고, 온 몸이 쑤셨다. 프로야구 시즌이면 뙤약볕 아래에서 탈을 쓰고 비지땀을 흘릴 마스코트들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리고 그날 밤 결국 몸살에 걸린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잠들고 말았다. '아이고 어깨야….'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사진 = KBL 제공]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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