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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하진 기자] "그 분이 없었으면 저는 지금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정상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감회를 표할 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들 중에는 가족보다도 더 깊은 관계로 협력하며 인생의 빛을 밝혀준 지도자이자 스승들도 있다. 스타들은 이들을 '은사'라고 지칭한다.
2002 한일 월드컵 첫 골을 넣고 달려오는 박지성을 품에 안은 히딩크, 벤쿠버 올림픽에서 은반 위를 아름답게 수놓은 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를 어쩔 줄 모르고 바라보며 기뻐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은 모두 이들의 은사다. 한 선수의 인생을 바꿔놓은 은사들은 그 선수의 실패와 좌절, 또한 영광도 함께 나눠 갖는다.
최근 박태환의 은사인 노민상 감독이 용퇴를 선언했다. 박태환조차 몰랐던 노민상의 용퇴는 수영계는 물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박태환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부활로 화제를 받는 순간에 밝힌 것이어서 놀라움은 더했다.
다섯 살 때 천식이 있던 박태환에게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시킨 그의 부모는 본격적으로 선수로 키워볼 생각에 노 감독의 수영 클럽을 찾았다. 노 감독은 박태환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노 감독은 수영 명문인 오산고에 진학했지만 선수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학업도 그만뒀다. 그러나 박태환의 승승장구로 2006년 8월 팬퍼시픽 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 감독에 발탁되면서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노 감독의 박태환 훈련은 남달랐다. 일일이 박태환의 훈련 일정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수행하게 했다. 또한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박태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할 때에는 서슴지 않고 "우려스럽다"라고 표하며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했다.
15년 동안 함께했지만 잠시 떨어져있던 시기도 있었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고 나서 2007년부터는 촌외 훈련을 하기 위해 전담팀 박석기 감독과 함께 훈련했다.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박태환은 다시 노 감독 밑으로 들어와 금메달의 영광을 함께했다.
위기도 있었다. 2009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태환은 노메달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로 잠시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노 감독과 박태환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기록하며 보란 듯이 부활했다.
박태환의 위기도, 부활도 모두 함께한 사람은 바로 노 감독이었다. 특히 한 선수가 15년 동안 한 스승의 아래에서 많은 일을 이뤄나간다는 것은 대한민국 체육계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품에 안고 금의환향한 박태환과 함께 가진 대표팀 기자회견에서 노 감독은 볼 코치의 재계약 문제부터 걱정했다. 노 감독은 "내가 볼 코치의 계약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볼 코치가 꼭 계약하셨으면 좋겠다"며 끝까지 박태환의 안위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였다.
또한 수영계의 열악한 환경을 거듭 설명하며 물심양면으로 국가적으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용퇴를 선언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감독은 언론을 통해서 수영계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열악한 수영계의 절실함을 계속해서 내비쳤다.
아직 박태환이 젊고 곧 있을 올림픽에서의 금메달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노민상 감독의 용퇴는 이래저래 아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열악한 수영계에서 박태환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노 감독이 그 마음과 노하우를 발휘한다면 제 2의 박태환 탄생은 시간 문제다.
박태환도 내년 런던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제 세대교체가 필요할 때가 됐고 앞으로 수영계를 책임질 또 다른 유망주가 필요할 때가 됐다.
이제는 박태환 곁을 떠나 다른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노민상 감독이 수영계에 힘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란다.
[노민상 감독과 박태환. 사진 = 마이데일리 DB]
김하진 기자 hajin0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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