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객원기자] 올해는 프로야구 출범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한 때 '왕조'라 불렸던 해태가 사라진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IMF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프로야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팀의 이름도 추억이 되게 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모기업 부도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2001년 8월부터 KIA 타이거즈로 새롭게 탄생했다.
1년마다 새로운 선수가 들어오고 유니폼을 벗는 프로 세계에서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때문에 '해태'란 이름을 가슴에 달고 경기에 뛰었던 선수들은 대부분 그라운드를 떠났다. 여기에 해태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선수들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모기업 경영악화로 팀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입단한 경우가 많다.
현역 선수 중 해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던 선수는 13명. 해태를 이어받은 KIA에서 뛰는 선수가 5명이며 다른팀 소속이 7명, 해외로 진출한 선수가 1명이다.
13명의 선수 중 가장 눈길이 가는 선수는 단연 이종범과 이대진. 두 명 모두 1993년 해태에 입단해 1993, 1996, 1997년 우승을 일궈냈다. 이종범은 1998년부터 일본에서 뛰다가 2001년 KIA 창단과 함께 고향팀으로 컴백했다. 이대진은 부상으로 인한 숱한 은퇴 위기를 넘기면서 현재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 해태 유니폼을 입은 최향남(롯데)의 경우 당시만 해도 '새가슴'으로 유명했다. '불펜의 선동열'이라 불릴 정도로 불펜에서는 뛰어난 투구를 펼쳤지만 마운드에만 오르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해태에서는 41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이후 1997년부터 LG로 소속팀을 옮겨 팀내 주축 선수로 떠올랐다.
일본 프로야구 최상급 마무리 투수가 된 임창용(야쿠르트)의 경우 IMF 시대 해태의 슬픈 자화상이기나 마찬가지다. 1995년 데뷔해 1997년부터 특급투수 반열에 오른 임창용은 1999년부터 소속팀을 삼성으로 옮겼다. 해태가 재정난이 심해지자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실시한 것.
1994년부터 해태에서 뛴 이호준은 2000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SK로 팀을 옮겼으며 1997년 포수로 삼성에 입단한 황두성(넥센)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 선수로 뛰었다. 강영식(롯데)은 2000년 단 한 시즌만 해태 소속으로 뛴 후 2001년부터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김상훈의 경우 2000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뒤 줄곧 한 팀에서만 뛰고 있으며 1999년 데뷔한 유동훈도 마찬가지다. 1996년 입단한 장성호와 2001년 해태 시절 막판 유니폼을 입은 김경언은 지난해 6월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2000년 입단한 김상현은 2002년 LG를 거쳐 2009년 원소속팀으로 복귀했으며 1999년 프로에 데뷔한 정성훈은 KIA, 현대를 거쳐 LG 유니폼을 입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해태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양준혁 역시 올시즌까지 뛰었더라면 이 명단에 포함됐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양준혁은 임창용과의 트레이드 때 해태 유니폼을 잠시 입은 바 있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선수들의 상황도 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굿바이 해태' 그 후 10년이다.
▲ 현역 선수 중 해태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이종범-1993~1997년
이대진-1993~2001년
최향남-1990~1996년
이호준-1994~2000년
임창용-1995~1998년
장성호-1996~2001년
황두성-1999~2000년
유동훈-1999~2001년
정성훈-1999~2001년
강영식-2000년
김상현-2000~2001년
김상훈-2000~2001년
김경언-2001년
[사진=여전히 소속팀의 상징과도 같은 이대진과 이종범(첫 번째 사진 왼쪽부터), 해태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팀 선수로, 혹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호준,임창용,최향남(두 번째 사진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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