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스포츠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만큼 정신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 종목은 없다. 그 중에서도 야구는 신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때문에 흔히 사람들은 야구를 멘탈 스포츠라 부른다.
야구는 동적인 부분과 정적인 부분이 적절히 섞인 스포츠다. 선수들이 '정적인'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 '동적인' 시간의 결과도 달라진다.
야구에서 심리적인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사례를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흔히 슬럼프에 빠져 있는 타자가 등장하면 야구 해설자들은 "빗맞은 안타 한 개가 슬럼프 탈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허황된 말 같지만 현실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삼성 내야수 신명철도 그랬다. 신명철은 5월 시작 이후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10일 경기 전까지 5월 한 달간 19타수 1안타에 그쳤다. 타율 단 .053였다.
10일 경기 첫 타석도 마찬가지였다. 신명철은 팀이 0-1로 뒤진 2회말 무사 1루에서 들어섰다. 볼카운트 2-1에서 신명철이 잡아당긴 타구는 '힘없이' 유격수 앞으로 굴러갔다. '병살타의 정석'이라 불릴 정도의 타구였다. 하지만 이 타구를 잡은 SK 유격수 최윤석이 악송구했고 2사 주자 없는 상황이 무사 1, 3루가 됐다. 결국 삼성은 동점을 만들었다.
신명철은 변했다. 이어진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깨끗한 좌전 안타를 때려냈다. 7회에는 정확히 밀어쳐 우전안타를 기록했다. 4월 28일 이후 첫 멀티히트 경기였다. 신명철은 수비에서도 글러브 토스로 발빠른 정근우를 병살타로 연결시켰다. 이날 신명철이 변할 계기는 상대 실책, 그것 뿐이었다.
사실 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계속 못치던 선수가 상대 실책 하나로 되살아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그 슬럼프 조차도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SK 우완 글로버는 올시즌 2승 1패 평균자책점 3.32 WHIP(이닝당 출루허용수) 0.98를 기록하며 SK 선발진을 이끌고 있다. 경기별로 살펴보면 글로버는 올시즌 7차례 등판 중 3자책 이상 기록한 적이 3경기다.
2자책 이하 경기와 3자책 이상 경기를 판별하는 방법은 '내야안타의 유무'다. 공교롭게도 내야안타를 허용한 3경기에서는 3자책 이상을 내줬다. 반면 허용하지 않은 4경기에서는 내야안타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내야안타를 내준 이닝에서는 모두 실점했다. 3개의 내야안타를 내준 3이닝에 그는 6실점했다. 모두 빗맞은 내야안타가 실점의 출발이었다. 글로버는 올시즌 던진 나머지 37⅔이닝에서 9자책을 기록했다.
이 뿐만 아니라 타격감이 좋던 타자들도 몇 차례 잘맞은 타구가 직선타로 잡히면 슬럼프에 빠져들고는 한다.
야구가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프로야구 1군에서 뛴다는 것은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머리 싸움,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가 타격, 혹은 투구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올해 3월, 박찬호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글 한 개를 게재했다. 하비 도프만 박사의 별세 때문이었다. 도프만 박사는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로 박찬호에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
박찬호는 별세 소식을 듣고 쓴 이 글에서 "순간 숨이 멎고 힘이 쭉 빠지는가 싶더니 눈가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며 "그는 지난 12년 동안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도전과 바른 생각, 선택 그리고 삶에 당당함을 가르쳐 주셨고 그에게 배운 지혜는 오늘날까지 저를 이끌어 줬다"고 감사함을 표시했다.
이처럼 다른 나라 프로스포츠의 경우 스포츠 심리학은 각 종목에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축구 FC 서울이 스포츠심리 상담역을 운영하기도 했다. 경기 내외적으로 정신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 종목인 야구인만큼 각 구단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야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진=삼성 신명철(첫 번째 사진 왼쪽), SK 글로버(두 번째 사진)]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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