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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의 시놉시스를 보고 '섹스앤더시티'를 떠올렸던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도 '로맨스가 필요해'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부터 '섹스앤더시티'와의 비교를 거론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30대 미혼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는 아주 보편적이며 평범한 소재는 그만큼 '섹스앤더시티'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니 '로맨스가 필요해'로서는 시작부터 큰 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연 '섹스앤더시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지켜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로맨스가 필요해'가 보여준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세 여자주인공 선우인영(조여정 분)과 박서연(최여진 분), 강현주(최송현 분)는 서로 다른 모습 속에서도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 자꾸만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낭만을 간직하고 꿈꾸지만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은, 너무도 뻔뻔하지만 그래서 현실적인 그런 사랑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로맨스가 필요해'의 정현정 작가에게 질문하는 순간은 선우인영과 박서연, 강현주를 직접 만나는 순간만큼이나 벅찼다. 정 작가는 세 캐릭터가 탄생한 순간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주었다. 또 그녀들의 성정과정 이면의 이야기를 말해줬다.
가장 먼저 '섹스앤더시티'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실상 국내에서도 많은 드라마들이 한국판 '섹스앤더시티'라는 화려한 푯말을 내세웠지만 흔적도 없이 쓰러져간 예가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부담을 안고 출발할 포맷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무척 흔하고, 평범한 소재이지만 말이다.
정 작가는 "'섹스앤더시티'가 가장 의식이 됐다. '노처녀와 그 친구들'이라는 말만 꺼내도 이미 '섹스앤더시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획단계에서 그 작품을 일부러 보지않았고, 대본을 2부까지 쓴 후 시즌2만 보았다"라고 밝혔다.
그 외 나머지 시즌은 보조작가들이 줄거리를 정리한 텍스트로 접했다. 그랬던 이유는 혹 비슷한 에피소드를 쓸 경우 표절시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섹스앤더시티'를 피해가기 위해 준비해둔 에피소드를 버리기도 했단다. 예를 들어, 가임기 안에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혼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노처녀의 기본적인 심리들은 이미 너무 많이 다뤄져서 피해갈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가는 "많은 분들이 우리 작품과 '섹스앤더시티'를 비교하시는데 시즌6까지 100여편에 달하는 에피소드를 끌어가며 긴 시간동안 캐릭터와 스토리를 쌓아간 그 작품과 겨우 16부인 우리 드라마를 비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 생각한다. 30대의 노처녀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한국과 미국이라는 공간적 거리만큼이나 여자들의 연애관이나 삶의 가치관도 다를 수 밖에 없고, 그 차이를 인식한다면 다른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라고도 전했다.
"처음에 기획안을 준비할 때는 네 명이 주인공이었다. 그때는 스위스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 (Carl Gustav Jung)의 Anima 개념에서 네 가지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시도했었다. 성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이브, 고상하고 아름다운 헬렌, 모성과 순결을 상징하는 마리아, 지혜를 상징하는 소피아가 그들인데 여자들은 대부분 그 캐릭터 안에서 구분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움직임 안에서 나머지 친구들이 움직이는데 반해, 우리 드라마에서는 각자의 개인서사를 가져갈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네명은 너무 많았다. 세명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통합되거나 현대적으로 변형됐다. 이브는 서연으로, 순결을 상징하는 캐릭터는 현주로, 그리고 세 친구 중 가장 이해하기 쉽고 무난하며 현실적인 인영이 남았다."
조여정이 연기하는 선우인영은 10년동안 만나온 남자친구 성수(김정훈 분)의 비겁한 바람으로 끝내 결별하고 만다. 그 결별과정은 결코 쿨할 수 없었으며 새로운 남자, 배성현(최진혁 분)이 등장했음에도 불구 둘의 관계는 좀처럼 끝나지 못한다. 쿨과는 거리가 먼 인영은 사랑에 빠져보고 또 그 사랑에 상처입어 본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정현정 작가에게도 인영은 로맨틱 코미디 속 평범한 캐릭터였다. 그는 "인영은 여러 의미에서 기존의 로맨틱 코메디의 여주인공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점을 부각시키고, 나름대로의 매력을 보이려고 애썼으나, 가장 신경을 쓴 것은 그녀의 선택이나 사고방식이 시청자들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한다는 것 이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인영의 친구인 강현주와 박서연은 난이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현주는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여자로, 무경험이 오히려 그녀를 엉뚱하게 만든 인물이다. 서연은 쉽게 오고 가는 인연과 사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쿨한 인물. 오히려 복잡다단한 관계도 단순한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고 모든 관계의 당당한 주체가 된 자유연애주의자다. 특히 이 서연에 대해 정 작가는 "쓰기 힘든 캐릭터였다"라고 털어놓았다. 주변에 흔하지만 이해 불가능한 인물이 서연에 대한 정 작가의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 개성강한 서연은 결국 작가를 설득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실 나는 서연의 캐릭터가 미움받을 거라 생각했고, 적어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벌이라도 달게 받는 인물로 그리려고했다. 이기적이지만, 자신이 이기적인 것을 아는 여자. '내가 잘못 했으면 벌 받아야지'라고 주장하는 여자. 그런 캐릭터면 미움은 덜 받겠지, 생각했으나 점점 서연은 작가인 나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작가인 나를 서서히 납득시켰다. 결국 10부에서 서연은 그녀의 창조자인 내게 말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가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거나.. 아무나 사랑하거나.. 그 둘 중 하나겠구나... 그리고, 선택했어. 그 둘 중 하나라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아무나 사랑하는 게 낫겠다' 물론 그 대사는 내가 썼지만, 10부까지 써오는 동안 서연을 이해하게됐고, 서연에게 설득당해 쓰게된 대사였다. 그리고 그걸로 나는 서연이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고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서연을 연기한 배우 최여진 역시 작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최여진 역시 서서히 서연에게 설득당하고 만 것이다.
과연 작가는 이들 각기 다른 세 여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결론까지 이제 4부가 남은 가운데, 작가를 졸라 힌트를 얻었다.
"더러는 그 결말에 대해 씁쓸할 것이고, 더러는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들에게 로맨스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 꼭 어떤 해답으로 귀결되는 드라마가 아니라도, 공중파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현실적 연애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대해 정직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여자들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또 세 여자를 통해 서로의 삶을 지켜보면서도 비난하지 않고, 힘이 되어주는 친구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친구를 껴안는 방법을 배웠다. 물론 가끔은 충고 하겠지만."
인터뷰②에서 계속...
*정현정 작가는 1999년 MBC 베스트극장 '브라보! 엄마의 청춘'으로 데뷔, 이후 MBC '테마게임(1999), MBC 코미디 특집극 '개그쇼, 좋은 걸 어떡해!'(2000), MBC 드라마 '어쩌면 좋아'(2001), KBS 드라마 시티 '오메, 징헌거'(2001), KBS '결혼이야기'(2003), SBS '세잎클로버'(2005), MBC 일일드라마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2006), SBS 미니시리즈 '사랑해'(2008) 등을 집필했다.
[사진=tvN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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