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세호 인턴기자] “비 와라. 비 와라. 비 와라......”
KIA 이범호는 경기 전부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현곤이 허리에 통증을 느껴 무려 7년 만에 유격수로 경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현곤만 빠진 게 아니다. 이미 지난주 최희섭과 김상현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주전 2루수 안치홍도 전날 2루 도루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다.
지난 4일 두산과 KIA의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 양 팀이 1승 1패로 호각을 이루고 있는 상황. 승자가 시리즈를 가져간다. KIA의 선발 투수는 김희걸.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고 있는 김희걸은 군 입대 전인 2007년 이후 선발승이 없다. 7월부터 장마와 폭우로 우천취소가 부지기수였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악몽 속에서도 하늘은 KIA를 외면했다. 경기 시작 전 덕아웃에서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조범현 감독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고 눈가에는 탄식이 그려져 있었다.
반대로 두산 입장에선 기회였다. 상대는 1.5군이나 다름없다. 이 경기를 잡는다면 롯데와의 후반기 첫 3연전 스윕패 충격을 만회하면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게 된다. 김선우가 등판하는 만큼 마운드에서도 두산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결과는 KIA의 승리였다. 김희걸은 1484일 만에 선발승을 챙겼고 7년 만에 유격수를 맡은 이범호는 1, 2회 2이닝 연속 더블플레이를 만들어냈다. 두산은 선발 김선우가 끝까지 마운드를 지켜냈지만 1-2로 패배했다.
두산은 이 경기에서 더블플레이 4개를 범했다. 병살타와 내야진을 가르는 안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5회말과 6회말에 두산이 저지른 더블플레이는 번트 미숙과 성급한 주루플레이에서 비롯됐다. 경기 전 김광수 감독 대행이 “선수들이 너무 한 점, 한 점 뽑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까 반복해서 사소한 실수를 범한다”라고 했던 것이 이날 경기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경기 후 김 감독 대행은 “김선우가 1승 이상의 호투를 보여줬다”고 짧게 말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5일 두산과 넥센의 주말 3연전 첫 경기. “전날 김선우의 호투에 보답하겠다”며 각오를 다진 두산은 연이틀 절호의 찬스를 잡는다. 1번 타자 이종욱이 넥센 선발 김성태를 상대로 1회부터 솔로포를 때려냈고 동시에 김성태가 공 세 개만을 던지고 어깨 이상으로 자진강판한 것이다. 상대 선발이 조기 강판됐고 두산은 3회 오재원의 투런홈런까지 터지며 순조롭게 승리를 챙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수비 실책이 두산의 발목을 잡았다. 5회말 1루수 김동주가 평범한 송구를 놓치더니 좌익수 김현수가 낙구 지점을 잘못 잡으며 상대에게 한 베이스를 더 내줬다.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견수 이종욱과 우익수 정수빈의 콜플레이 미숙으로 두산은 5회에만 7점을 빼앗겨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두산의 5-8 패배.
그리고 7일. 전날 승리를 거둔 두산은 후반기 첫 번째 위닝시리즈에 다시 도전했지만 넥센 선발 투수 문성현에게 철저하게 타선이 봉쇄당했다. 문성현은 개인 최다 이닝인 7이닝을 던지며 무실점투를 펼쳤고 두산은 0-3으로 올 시즌 열 번째 영봉패를 당하고 말았다.
올 시즌 신예, 혹은 4, 5 선발 투수들에게 두산전은 자신의 이름값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난해 팀 홈런 149개, 팀 장타율 0.440으로 리그 정상급의 타력을 뽐내던 두산은 올해 팀 홈런 62개, 팀 장타율 0.384를 기록하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상대 투수들은 ‘결정적 한 방’이 사라진 두산 타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격력 저하뿐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두산의 승리를 지켜냈던 필승 불펜진이 무너진 것도 올 시즌 두산을 힘들게 하고 있다. 5월초 임태훈이 팀을 떠나면서 불펜진은 과부화에 직면했고 고창성과 정재훈이 각각 제구 난조와 부상으로 1군에서 이탈했다가 최근에 돌아왔다.
수비진 붕괴도 겪고 있다. 유격수 손시헌의 부상으로 한 달 간 센터라인에 구멍이 생겼다. 코너 외야수 중 팀 내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임재철은 4월 27일 이후 부상과 발목 수술로 현재까지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 시즌까지 두산 타선에는 힘과 스피드가, 불펜진에는 두터움이, 그리고 수비진에는 정교함이 조화를 이뤘지만 올해는 이 모든 게 사라진 듯 보인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반등을 꾀해 5년 연속 가을잔치 티켓을 쟁취하겠다던 두산의 목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패배 후 고개를 떨군 두산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세호 기자 drjose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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