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세호 인턴기자] “전역 후 이상하게도 직구가 예전처럼 구사되지 않았다. 결국 투구 스타일에 변화를 많이 줬고 포수의 리드를 따른 게 호투의 원인인 것 같다.”
두산 우완투수 김승회가 11일 SK전에서 무려 4년 78일, 정확히 1538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선발승 뿐이 아니다. 이날 김승회는 6⅔이닝 무실점으로 통산 첫 퀄리티스타트까지 기록했다. 선두권 탈환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SK 타선을 상대로 안타는 단 하나 만을 내줬다, 그야말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으로 팀의 후반기 첫 위닝시리즈를 이끌었다.
어쩌면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6월 두산의 김광수 감독 대행은 불펜 요원 김승회를 5선발로 낙점하면서 “절대 고육지책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미 김승회는 2006년과 2007년 두산 불펜 필승조의 한 축을 담당했을 때의 구위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예전 ‘돌직구’를 던졌던 김승회라면 모르지만 최근의 김승회는 그 때의 김승회와는 거리가 있었다.
2007년 두산은 손시헌의 군입대로 내야진의 중심을 잃었고 SK와의 트레이드로 이대수를 영입해 손시헌의 공백을 메웠다. 그리고 당시 SK측에서 첫번째로 두산에 요구했던 선수가 바로 김승회였다. 결국 두산은 김승회 대신 나주환을 SK에 내주며 김승회를 지켰다. 그만큼 군입대 이전의 김승회는 한 팀의 주전 유격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든든한 불펜 요원이었다.
현란한 변화구를 던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묵직한 ‘돌직구’ 하나로도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2006년에는 79⅔이닝을 소화하며 68개의 탈삼진을 기록, 6승 10홀드를 올렸다. 당시 김승회의 활약 덕분에 두산은 2005년 홀드왕 이재우의 공백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군 전역 후 첫 해인 2010년, 김승회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돌직구’라 불렸던 직구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변화구를 연마했지만 몸에 익은 투구 스타일을 바꾼다는 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꾸준히 1군 마운드를 밟았지만 결과는 늘 실망스러웠다. 단 두 개의 홀드 만을 기록하며 40⅓이닝 평균자책점 4.24로 전역 후 첫 시즌을 마쳐야했다.
김승회는 변화를 택했다. 직구 위주의 피칭에서 탈피하고 변화구를 부단히 가다듬었다. 코칭스태프 역시 김승회의 절박함이 바탕이 된 노력을 외면하지 않으며 김승회를 5선발로 낙점했다.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6월 17일 시즌 첫 선발등판에선 부진했지만 8월 5일 넥센전부터 변화구 제구가 안정적으로 됐다. 커브로 카운트를 잡고 포크볼 혹은 체인지업으로 상대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5회말 수비에서 야수들의 집단 에러가 없었다면 김승회의 올 시즌 첫 선발승은 6일 앞당겨 졌을지도 모른다. 5점을 내줬지만 자책점은 2점이었다. 패전투수가 됐지만 김승회 개인에겐 성공이라 볼 수 있는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이었다.
결국 변화에 대한 노력은 김승회를 배신하지 않았다. 11일 SK를 상대로 김승회는 완벽투를 펼쳤다. 슬라이더와 포크볼의 비중을 높여 상대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았다. 김승회의 변화구에 SK 타자들은 헛스윙을 연발하거나 범타로 물러났다. 직구 제구 역시 잘 이뤄지며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날카롭게 찔렀다. 근데 직구가 주무기는 아니었다. 총 86개의 투구수 중 직구는 겨우 33개. 직구 구사율이 50%도 안 된다는 것은 이전의 김승회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살아남기 위한 변화가 첫 번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마친 후 김승회는 “변화를 통해 새롭게 나만의 투구 스타일을 만들었다. 선발투수로 자리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힘으로만 던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경기장을 찾으셨는데 어머니께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직접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기쁘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두산 김승회. 사진 = 두산 베어스 제공]
윤세호 기자 drjose7@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