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이야기는 한 채권추심원의 냉혹함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빚더미에 놓였지만 실낱 같은 희망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한 가장이 막다른 골목에서 기름을 부어 자살하려고 하자 이를 뒤쫓던 채권추심원 태건호(정재영 분)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반성이 아닌 남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강한 마음"이라며 라이터를 켜 내어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악착 같은 건호에게 암 선고가 내려지는 반전이 찾아온다. 간암 말기로 앞으로 남은 시간은 불과 3개월. 이후 등장하는 장면들, 예를 들어 의사에게 "돌팔이"라며 화를 내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건호의 모양새는 시한부 소재의 TV나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한 장면이다. 하지만 태건호의 특별함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삶에 대한 포기를 권하는 의사에게 "반드시 10일 만에 간이식을 받아내겠다"라며 자신의 간을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충격적인 엔딩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만든다. '태건호는 대체 왜 저토록 삶에 집착하는가, 저렇게까지 살아남으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암판정 이후, 태건호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데 그중 하나는 아들의 죽음이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는 복선이 깔리면서 삶에 대한 건호의 잔혹한 집착에 대해서도 조금씩 실마리가 드러난다. 모든 비밀이 해소된 시점에는 오프닝에서의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다시 떠오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빚은 돌고 돌아 서로 빚지며 살아간다는 이 세상에서 그 개인에게 던져진 빚더미, 그리고 그가 불현듯 만들어낸 빚더미는 너무나 잔인하고 버거운 무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자 했던 10일간의 악착같은 여정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칸의 여왕, 전도연의 팜므파탈 연기는 단연 훌륭하다. 매혹적이며 요염한 동시에 순진무구한 매력이 절묘하게 오간다. 여기에 오만석의 연변 사투리도 한 몫해 일종의 청량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걸출한 배우들을 더욱 빛내준 것은 신인감독 허종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력이다. 너무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한 남자의 인생사를 천천히 사방으로 전파되는 수면의 요동처럼 전개해나갔다. 개봉은 29일. 청소년 관람불가.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