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경민 기자]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감독 이정향이 돌아왔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집으로’로 이어진 연타석 홈런은 이 감독을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한국 영화가는 새로운 여성 감독의 등장에 환호를 보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이후 침묵을 지켰다. ‘집으로’ 성공 이후 할머니 가족과의 분쟁과 함께 해온 영화사의 폐업. 2000년 초반 한국 영화가 최고 흥행기에 등장했던 그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스타 송혜교와 함께한 ‘오늘’로 27일 관객을 만난다. 무려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감각적인 스토리 텔링은 여전했지만, 소재에 대한 무게감은 더 진중해 졌다.
영화 ‘오늘’을 들고 다시 대중에게 돌아온 이정향 감독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봤다. 이날 이 감독은 퍽 두꺼운 수첩을 손에 들고 있는게 눈길을 끌었다.
-손에 수첩을 들고 계신데 무엇인가?
아. 내가 ‘오늘’을 기획하면서 모아 놓은 정보들이다. 5년간 내가 생각나는 것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자료를 모으다 보니 40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집이 돼 버렸다. 이 속에는 아동학대 문제, 사형, 소년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햇갈릴까봐 들고 나왔다.
-5년의 기획 단계를 거쳤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내 영화가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사형과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다. 영화를 그려나갈 때는 이분법을 적용해서 한쪽 편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영화에서는 반대 되는 의견을 같이 싣고 고민하고 싶었다. 1년이면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왜 이런 무게가 큰 작품을 그리게 됐나?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고 본다. 모두들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는 외치고 많은 정치인들이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지만, 이마저 겉핥기라고 나는 본다. 사형수들이 어떻게 방치가 되고 있는지 그들이 주목한 적이 있나? 그리고 그 피해자 유가족의 입장을 들여다 본 적이있나 묻고 싶다. 나는 어느 한 방향에 치우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을 전해주고 싶었다. 취사 선택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왜 제목이 ‘오늘’인가?
‘오늘 하루를 뜻깊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매일 분노 속에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지도 못하고, 그 가해자를 인권보호라는 명목하에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용서를 해야하나? 무늬만 용서를 할 뿐이고 스스로는 하나도 치유받지 못한다. 결국 유가족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가슴 중앙에 있는 분노를 구석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노를 변두리로 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봐 달라고 해서 ‘오늘’로 제목을 정했다.
가짜 용서를 했다. 용서를 못한 상태에서 그는 살아 왔다. 강요된 용서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혜의 모습을 지민을 통해서 풀고 싶었다.
-송혜교와 이정향 감독은 어울리는 공식이 아니라고 본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송혜교라는 배우가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밭고 싶어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송혜교는 안어울려요’라고 단칼에 잘라 말했다.(웃음)
-그렇다면 왜 송혜교를 쓰게 됐나?
재차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한번 만나 봤는데, 내가 TV에서 보던 이미지와는너무 달랐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제본을 해서 송혜교 소속사 측에 줬는데 답변이 왔다. ‘마음이 답답하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이거다 싶었다. 여느 배우들 처럼 ‘시나리오 잘 봤어요. 하고 싶어요’라고 했다면 같이 안했을 것이다. 그 말은 시나리오에 공감을 했다는 것이고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둔 적은 없었나?
사실 송혜교가 내 작품을 덥석 물어가서 겁을 먹었다. 송혜교가 아니었으면 아마 한국에서는 배우를 못 구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색깔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한국에는 없다고 본다. 20대 후반을 그릴 수 있지만, 가볍지 않은 그런 배우. 그래서 이런류의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일본 배우 중에서 구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일본어를 못해서….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지구가 안 망하나 생각을 했다. 난 촬영하는 것이 너무 싫다. 현장에서는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너무 싫다. 송혜교는 천상 배우였다. 여느 배우들과는 달리 송혜교에 대한 믿음은 컸다. 그는 엄청난 노력파고 내가 딱히 디렉팅할 것 또한 없었다. 내가 촬영장에서 한 이야기는 ‘다혜가 알아서 해’ 였을 정도였다.(웃음)
-영화 ‘오늘’은 이정향 감독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사춘기 같은 영화다. 내가 유년기에 찍은 두 작품이 의외로 흥행했고, 긴 사춘기를 겪었다. 한 인간이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의례를 겪고 그 결과로 내 놓은 작품이 ‘오늘’이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이 나오는데, 9년이 걸렸지만 다음 작품과의 간격은 좀 적게 두고 싶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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