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한국, 자신들의 건강, 환경, 안정을 스스로 결정 못하게 됐다"
"일본 언론이 문제입니다. 아무도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의 결점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이 2.7조엔 증가한다구요? 내가 작년부터 저 숫자 본 것 같은데, 그대로네요. 저 수치 확인해야 합니다. 10년째 저 숫자 그대로 아닙니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격변을 쏟아놓는다. 말미에는 화가 치밀어올랐는지 던지듯 볼펜을 놓는다.
이 인물은 바로 교토대 나카노 다케시 준교수. 그는 2005년까지 경제통상성 자원에너지청에서 근무했던 인물로, 현재 교토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도시사회공학전공 준교수로 재직중이다.
그가 27일, 후지TV 아침방송 '도쿠다네'에서 열변을 토해내는 동영상이 최근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메이저 신문, 방송사들이 "한번 지나간 버스는 탈 수 없다, 지금 타야 한다"는 이른바 '버스론'을 내세우며 천편일률적으로 일본의 TPP참가를 종용, 혹은 부추기는 보도행태 속에서 그의 'TPP 결사 반대' 주장이 새삼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며, 정리가 잘 돼있고, 이해하기 쉽다며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국가입니다. 수출을 배로 늘리고, 수입은 그대로 둔다는 정책을 국세를 들여가며 펼치고 있습니다. TPP 내에서 수출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다른 비중이 작은 약소국이 아닌, 일본의 시장을 앗아간다는 소립니다. TPP를 통해, 일본의 제도를 바꾸고 개혁해서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은 글로벌화 됐습니다. 이미 관세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관세가 철폐된다한들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거나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본은 현재 TPP, 즉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참가할지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TPP는 미국을 비롯한 9개국이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협정으로, 농업, 공업 관세의 완전한 철폐뿐만 아니라, 금융, 노동, 환경 등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외국기업의 진입장벽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정이다.
한국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일본도 TPP교섭에 참가할지의 여부가 큰 논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여태껏 쉽사리 진행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일본 정부는 현재 TPP참가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내부문서를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노다 수상 또한 TPP참가에 긍정적인 입장임을 밝혔다.
한미FTA가 미국 의회에서 통과됐을 때는 모든 일본의 주요 TV, 신문사들이 '일본 위기론'을 내세웠다. 아사히신문조차 '일본의 악몽이 다가왔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10월 14일자) 하기도 했다. 다른 여타 언론도 앞서 언급한 '버스론'을 거론하며, '버스를 놓쳐서는 안된다. TPP라는 버스에 늦게라도 타야 한다'며 TPP참가를 종용하는 논조, 혹은 TPP참가를 원하는 이들의 의견을 내세운 기사를 천편일률적으로 내보냈다. TPP의 문제점보다는 장점, 또는 참가하지 않았을 경우의 불이익을 전면에 내세워 강조해 보도했다.
그래서인지, 후지TV '도쿠다네'에 초청된 나카노 준교수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빼들었다. 그는 격한 어조로 단호하게 'TPP는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일본언론에게, 그리고 한국에게 들으라는 듯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미FTA 합의 후, 일본 TPP 추종론자들은 이를 부러워하며, '일본도 TPP참가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부러워하던 한국이 어떤 심한 꼴을 당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은 자신들의 건강, 환경, 안전을 자신들 스스로 정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일본이 미국의 수출 2배 증가 전략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수입은 늘리지 않고, 수출만 늘리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결국, TPP를 통해 일본의 시장만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보다 약자인 입장에서 협상 또한 미국이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그 사례가 바로 일본 언론과 TPP 찬성파들이 주목했던 한미 FTA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요?"
"한국은 미국에 수출할 때 냈던 미국의 관세를 없앨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 경쟁력에 그리 큰 영향이 없습니다. 그대신 무엇을 잃느냐 하면, 쌀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이 자유화됐다는 것입니다. 쌀 자유화 또한 앞으로 미국이 계속 요구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농협, 어협의 보험제도, 우체국 보험 서비스는 3년 이내에 해체됩니다. 미국 보험회사가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안전기준, 자동차 세제, 이건 모두 미국에 유리하도록 변경됐습니다. 지적 재산권 문제도 미국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의료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한 약값에 대해 미국 제약회사가 너무 싸다고 불복할 경우, 한국정부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TV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지만, 방송법 외자 규제 또한 완화됩니다."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즉, 한국은 자신들의 건강, 환경, 안전 등을 자신들 스스로 정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마지막으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3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FTA에 대해 '미국 고용이 7만 명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국의 고용이 7만 명 빼앗긴다는 소리입니다. 덧붙여, 미국이 한국에게 요구한 사항을 이번엔 일본에게 주장할 겁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FTA에 대해 비판하며,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국제정치적으로 강자이고 대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협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했다.
옆에 있던 한 패널도 "현재 TPP 교섭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협상 조건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일본 의료보험제도 같은 것이 변하면 곤란하다. 일본의 의료보험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만약 TPP협정에 참여하게 되면) 그것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걱정"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과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많이 닮아있다. 그의 말은 곧 한국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한미FTA 이후 각종 보험, 의료제도의 변화.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무역협정에서 고민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패널의 말이었다.
방송 막바지에 '도쿠다네'에 출연한 패널과 나카노 교수 등 모두가 서로 의견을 같이 한 것은 바로 "교섭 논의가 너무 적고, 성급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만큼, 섣불리 참가해선 안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자 한 패널이 "일단 교섭에 참가하고, 별로면 빠져나오면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카노 교수는 "협정은 결혼입니다. 협정 교섭에 참가하는 것은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란 말입니다. 만약 결혼을 파기하면, 그 관계는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게 국제사회의 상식입니다. 중간에 빠져나오다니요. 그러면 미일관계는 단숨에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라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 교섭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교섭 테이블에 앉지 않은 일본은 TPP 협정에 참여할지, 충분히 생각할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한미FTA는 벌써 미 의회에서 통과돼 한국 국회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어, 나카노 교수의 말이 뼈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딱한 입장이다.
'과연 한미FTA의 논의는 충분했는가'
이미 한미FTA가 8부능선을 넘어버린 만큼, 한미FTA는 이제 되돌리기도 어려운 상황에까지 왔다. 한국정부와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독소조항 철폐 등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 한미FTA 비준안의 핵심쟁점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나카노 교수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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