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유정 기자] FA 대어 중 하나인 이택근이 지난 14일 원 소속구단인 LG와의 첫 협상에서 구단과 불협화음을 내며 별 다른 소득 없이 입장 차이만을 확인했다.
2003년 프로에 입문한 이택근은 외야수와 1루수로 전환해 간간히 출장하면서 잠재성을 보였다.
이후 2005년 시즌 중반 무렵 1군 무대를 밟아 .331(71경기 46안타 2홈런 14타점)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322-.313-.317-.311) 꾸준히 3할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알렸다.
이택근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공격과 수비, 주루 3박자를 고루 갖춘 중견수로 평가받았다. 2006년과 2009년에는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던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09 WBC(은메달)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0년 1:3 트레이드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은 그는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택근은 고질적인 허리부상과 함께 팀 내 포지션 중복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2년간 단 176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이에 올 시즌 FA 시장에 몸을 던진 이택근에 대한 구단의 처우가 녹록치 못하게 됐다. LG는 협상 테이블에서 '3+1년' 27억원(옵션9억 포함)의 카드를 제시했으며, 그는 받아드릴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내비쳤다.
이택근의 사례를 보면 KIA 타이거즈 홍현우가 떠오른다.
1990년대 첫 프로 무대를 밟은 홍현우는 해태가 4회 우승(91.93.96.97)을 하는 동안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홍현우는 1999년 4월 16일 26세 6개월 18일로 역대 최연소 1000안타 기록을 세웠다. 또 해태의 해결사 한대화를 대신한 3루수로 공격과 수비, 주루 모두에서 흠잡을 곳 없는 활약을 펼쳤다.
이에 그는 3번(95,96,97)의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과 1999년에는 600타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홍현우는 지난 2000년에 댄 로마이어(전 한화 소속)의 태클로 발목과 발부위에 부상을 당하면서 잠시 주춤했고, FA 자격을 얻은 후 새로 튼 LG둥지에서도 그의 성적은 참담했다.
홍현우는 서울 입성 후 90년대 화려한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부상으로 부진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FA 계약 4년 .204의 타율(221경기 129안타 14홈런 63타점)을 올렸다. LG의 몸담고 있을 시절 홍현우의 안타와 홈런을 돈으로 환산했을 경우 LG는 홍현우의 안타 1개에 약 1,395만 원, 홈런 1개에 약 1억2,857만 원(18억 원 기준)을 투자한 셈이다.
홍현우는 FA 자격을 취득 할 당시 부상으로 주춤하고도 이제껏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아 LG와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사상 최고의 대우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는 최악의 결과를 내놓았다.
이택근의 경우에도 현재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부진까지 겪고 있어 FA 계약 후 예전 그가 보여줬던 전성기의 가도를 다시 달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 LG에서는 다소 주춤하는 것이다.
[이택근. 사진 = 마이데일리 DB]
김유정 kyj765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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