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하진 기자] 최고의 타자 이대호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렸다. 이대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재가로 형 이차호 씨와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힘든 형편에도 자신에게 야구를 시켜준 것도 할머니다. 하지만 이대호가 경남고 2학년이던 1999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비록 할머니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이대호는 야구로 승승장구했다. 급기야 2010년에는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신기록도 세웠고 타격부문에서 7관왕을 차지하며 MVP도 차지했다. 이제 이대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행을 선택했다. 6일 부산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에서 오릭스 버펄로스의 입단을 알리는 기자회견까지 가지고 유니폼까지 입은 이대호는 이 순간에도 할머니를 떠올렸다.
흰색 유니폼에 모자까지 쓴 이대호는 취재진들 앞에서 새 팀 유니폼을 입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등 번호를 보여달라는 요청에 "백넘버와 나이데스(등번호가 없다)"라며 짧은 일본어로 손을 내저었다. 2005년부터 롯데에서 달고 뛰었던 10번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이대호는 52번도 등 번호 후보에 올렸다.
"매번 52번을 달고 팠다"던 이대호의 말에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내 "두 번호 다 안되면 999번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등 번호는 나중에 해도 되는 이야기"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대호는 많은 편견을 깨뜨린 선수다. '최다 안타를 못 칠 것이다''뚱뚱하면 야구를 못한다''수비가 안 되서 안 될 것이다'라던 주위의 말들을 본인이 몸소 '할 수 있다'라며 증명해 보였다.
이 같은 편견들을 깨뜨리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대호에게 배트와 글러브를 처음 쥐어주었던 할머니 덕분이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유독 강하기 때문에 아내 신혜정 씨에게도 지극정성이다. 애처가로 유명한 이대호는 내년 1월 태어날 아이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을 놔두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신입과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한다. 하지만 이대호는 유니폼 뒤의 텅빈 부분을 52번으로 채울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등번호가 10번이 될 지 52번이 될 지 아니면 정말 999번이 될 지 모른다. 어떤 번호를 달든지간에 할머니의 사랑으로 또다른 편견을 깨뜨릴 이대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오릭스 버펄로스의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하진 기자 hajin0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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