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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꿩 먹고 알 먹는 연극 아닌가요?"
영국 최고의 극작가 데이빗 해어(David Hare)의 대표작인 연극 '은밀한 기쁨'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가치관 충돌과 그 안에서 갈등하며 흔들리다 파멸에 이르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리얼리즘 연극인 만큼 '은밀한 기쁨'은 배우들의 남다른 내공이 무대를 장악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 자체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따라 극을 이해하며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은밀한 기쁨' 속 배우들은 그 어떤 연극보다도 치밀한 연기로 무대 위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가운데 어윈 포스너 역 이명행의 내공 역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져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극단 맨씨어터 대표이자 배우인 우현주의 제안으로 '은밀한 기쁨'에 합류한 이명행은 오랜만에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이명행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총 8장인데 1, 2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음엔 '굉장히 길구나. 만만한건 아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족 드라마인데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 궁금했고 정부든 종교든 약간만 대입시켜도 와닿는 게 있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입을 열었다.
▲ "너무 예쁜 추상미, 집중력 대단해."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관객들에게 이미 연기력을 인정 받은 그에게도 '은밀한 기쁨'은 연습부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앞서 연극 '스테디레인'을 통해 김광보 연출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공교롭게도 '스테디레인'에선 이석준, '은밀한 기쁨'에선 이석준의 아내 추상미와 호흡을 맞추게 돼 서로를 잇는 지점들이 생겨 조금씩 작품, 다른 배우들에게 다가섰다.
"추상미 누나는 이 공연으로 처음 뵀다. 이 공연으로 처음 본 사람은 상미 누나 한 명이다. 하지만 상미 누나에 대해 (이)석준 형이랑 계속 얘기하다가 만나니까 처음 본 느낌은 아니었다. 상미 누나도 워낙 후배를 잘 챙겨주고 나는 어쨌든 상대 배우니 호흡이나 연기에 대해 얘기도 많이 했다. 그래서 편했다. 다른 선배님들 역시 같이 작품을 했던 분들이라 다행이었다. 물론 막내라 빠릿빠릿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웃음)"
극중 이명행이 연기하는 어윈은 이사벨(추상미)을 사랑하고 그녀와의 소박한 삶을 꿈꾸는 약혼자다. 그러나 이사벨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데 일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어윈 역시 파멸에 이른다. 이명행은 이사벨 역 추상미와 사랑을 속삭이다 점차 격해지는 감정으로 극에 치닫는다.
이명행은 "추상미 누나는 우선 너무 예쁘다. '누나는 점점 예뻐진다'고 얘기 했었을 정도다. 어윈은 이사벨에 대해 물론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인지라 이기심이 있고 돈도 벌고 싶어한다. 그러니 이사벨과 부딪치는 면이 생긴다"며 "근데 누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니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고 싸움이 안 되더라. 누나가 '나를 좀 미워해야돼. 나에 대한 증오가 있어야 된다'고 얘기해 그런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추상미 누나는 집중하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사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와 있지 않나. 연습실에 오면 배우들이 나와 웃고 떠들어도 어느 순간 보면 상미 누나는 연습실에 앉아 자기 감정을 잡고 있다. 캐릭터를 잡고 있는 것이다. 집중력이 좋은 것 같다. 순간 훅 들어가고 어느 순간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느 순간 훅 들어오면 나도 에너지를 훅 받는다. 상대 배우로서 좋은 점은 그런거다. 이 사람이 훅 해주면 나는 아주 쉽게 거기에 대한 리액션만 하면 된다. 조언도 많이 해줬다. 주고 받는 것을 많이 가르쳐주신다."
▲ "보통 남자 어윈, 닮은 지점 분명히 있겠죠."
그렇게 추상미와 주고 받으며 구축된 어윈. 어떤 이에겐 공감을, 어떤 이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어윈을 '보통 남자'로 정의했다. 상징적인 인물 이사벨에게 극적인 상황을 맞게 하는 인물이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것.사랑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이야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아니겠나.
이에 이명행은 실제 성격과 어윈의 공통점을 묻자 "닮은 지점이 분명히 있다. 집착?"이라고 답한 뒤 "나도 연애할 때 술 마시고 밤 늦게 찾아가거나 그랬던 기억이 있다. 어윈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기억들은 있다. 이사벨은 좀 다른데 어윈이라는 캐릭터는 이해 못할 지점은 없다. 극대화 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 정서는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이사벨하고 말싸움 하거나 그 부분에 대해서 상미 누나랑 얘기를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이 사람의 개인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가 그런 것. 들어가다 보면 이 여자를 너무 사랑한다. 근데 사랑하지만 내 이기심도 있고 사랑과 내 이기심이 맞물려서 집착을 하게 되고 '내가 살려면 이 여자가 있어야돼' 하는 마음이 말 그대로 짬뽕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게 힘들긴 했다."
실제로 이명행은 극의 흐름에 있어 감정을 공감시키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쟤 왜 저래?'라는 의문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믿고 가는 대범함도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격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캐릭터의 감정은 공감시키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 지금도 여전히 고민중이다.
"'은밀한 기쁨'은 가족극이라고 생각하고 간다. 우선은 가족극으로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한다.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고 크게 지루하지 않다. 분명히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볼거리도 있고 극적인 부분, 긴장된 부분이 있다. 가족극이라는 틀에서 비판적인 면을 담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도 자연스럽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조금만 끼워 넣으면 상징적인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점에선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연극, 이런 연극이야말로 정말 재미난 공연이 아닌가."
한편 연극 '은밀한 기쁨'은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이명행, 추상미 공연 이미지. 사진 = 스토리피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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