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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사실 저도 이번에 아류작 하나 들어가거든요."
지난 20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의 오프닝 멘트다. 이 대사는 방송비평을 주 내용으로 하는 프로그램 출연진의 자조성 개그였지만, 실제 방송가에 새롭게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류'라는 지적에서 당당한 경우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론칭 기사에 으레 "또 베꼈네"라는 네티즌의 댓글이 덧붙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각 가정에 설치된 TV의 채널이 0번 대부터 시작해 800번에 이르는 요즘, 수많은 방송사와 제작진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생존법은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창조하는 자와 따라하는 자의 구분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있다.
지상파 못지않은 자본을 확보한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에서 탄생한 혁신적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에 민감한 방송 얼리어답터를 자극해 입소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몇 달 뒤 지상파에서 조금 더 화려한 출연진과 대중적인 구성으로 재탄생하고, 모험을 시도하기 힘든 영세 케이블채널에서는 유행과 안전함을 이유로 이를 또 따라하게 된다. 마치 몇 년 전 휴대전화 시장을 보는 듯 한 이 구조는, 짧아진 휴대전화 교체주기처럼 아이디어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
구태여 MBC '무한도전' 이후 우후죽순처럼 탄생한 리얼 버라이어티 탄생사까지 되짚지 않더라도,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성공 후 안방극장은 스타 자녀들의 유치원이 됐고, '일밤-진짜 사나이' 이후 스타들은 웬만한 직업 체험을 다 해봤다. 또 '썰전'의 흥행 후 연예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는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한 연예인 패널진과 평론가 1명이라는 구성이 정착됐고, 사회 진단 프로그램에는 검은 배경 세트와 둘러앉은 패널들의 모습이 어김없이 등장하게 됐다.
프로그램 또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라고 볼 때, 상품에 수명주기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요계 표절 논란 당시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표현이 면죄부로 여겨졌던 것처럼, 타 프로그램 따라하기가 '트렌드'라는 면죄부와 함께 만연화된 현 상황은 해당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 모두의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아이디어와 비슷한 구성이 가득한 TV, 그 결과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디어의 창조자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시청자다.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위)와 MBC '일밤-아빠 어디가'. 사진 = JTBC, MBC 제공]
이승길 기자 winning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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