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아무것도 안하면 너무 미안하잖아'
영화 '한공주'와 '방황하는 칼날' 속 등장하는 대사다. '한공주'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를 피해 도망가야 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방황하는 칼날'은 처참하게 살해된 딸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하면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청소년 성범죄를 다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접근하는 방식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한공주'는 사건 발생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피해자인 공주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방황하는 칼날'은 딸이 죽어가는 현장을 영상으로 본 뒤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복수하는 아버지를 따른다.
먼저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자극적이지 않게 조용히 공주의 뒤를 따르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잘못한 것이 없는 한 아이를 어둠속으로 내 모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스크린을 똑바로 응시하기가 힘들다.
어른들(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에 의해 떠밀리듯 전학을 당해야 했던 공주는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는 말로 항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황스러운 시선이다. 그렇게 공주는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듣는다.
공주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는 어른들이 아니다. 작고 여린 한 소녀를 감싸주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하지만, 공주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이들은 공주의 외면과 구박에도 항상 웃음으로 맞아주는 같은 반 친구 은희이다. 그렇게 공주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다.
공주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잘못을 한 것은 없지만, 공주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는 감정이 절로 느껴진다. 이런 세상을 만든 이런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는 감정이다.
또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지켜주지 못한 아비의 마음을 대변한다. 걸핏하면 야근인 아버지 상현은 언제나 딸 수진에게 미안하다. 수진이 성폭행을 당한 뒤 죽어가고 있을 당시에도 상현은 잔업으로 야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수진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상현은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한다. 때마침 도착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딸 수진을 죽인 범인이 남긴 증거를 찾기 위해 가해자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처참하게, 짐승만도 못한 이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본다. 그렇게 상현은 피해자의 가족에서 가해자가 된다.
'방황하는 칼날' 역시 스크린을 응시하기 힘든 작품이긴 마찬가지다. 상현의 감정, 분노와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상현의 눈빛과 표정은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힘든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 딸의 환영을 보는 상현은 딸에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에게 너무 미안하잖아"라고 눈물을 흘린다.
두 작품은 모두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작품을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이 나오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한다.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은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근본적인 이유가 과연 아이들에게 있는 것일까. 상영 등급을 논하기 전에 어른이라서 미안함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영화 '한공주', '방황하는 칼날' 포스터. 사진 = 무비꼴라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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