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왼손 에이스들이 부활했다.
5일 4개구장 승리투수 4명 중 3명이 왼손투수였다. 올 시즌 거의 모든 구단이 왼손 투수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6일 현재 투수 부문 지표를 살펴보면 왼손투수들의 점령이 눈에 띈다. 평균자책점 상위 10명 중 7명이 왼손투수다. 다승 톱5 중에서도 4명이 왼손투수다. 최다이닝에서도 왼손투수는 오른손투수와 똑같이 5명이다.
프로야구 전체적으로 보면, 당연히 오른손투수가 왼손투수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성적과 기록은 똘똘한 왼손투수들이 오른손투수들을 압도하거나 대등한 모습. 이런 양상은 2008년~2010년 이후 약 4년만이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왼손투수들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올 시즌 왼손투수들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렸다.
▲ 왼손 에이스 1차 전성기
2006년 한화에서 데뷔한 류현진은 7년간 맹위를 떨쳤다. 당시 좋은 왼손투수가 많았다. 류현진보다 1년 늦게 데뷔한 김광현(SK)은 류현진에겐 좋은 자극제였다. 김광현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45승을 챙겼다. 연평균 15승. 양현종(KIA) 역시 2009년과 2010년 28승을 챙기면서 맹활약했다. 장원준(롯데)도 2008년부터 군복무 직전 시즌인 2011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리수 승수를 챙겼다. 장원삼(삼성)도 2010년 삼성 이적 이후 비교적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봉중근(LG) 역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리수 승수를 올렸다.
2011년을 기점으로 김광현은 부상, 양현종은 구종 다변화 후유증으로 인한 부진으로 주춤했다. 봉중근은 팔꿈치 수술과 재활 이후 마무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장원준은 군 복무를 시작했다. 차우찬(삼성)은 잠깐 반짝했으나 그 위용을 오래 끌고 가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류현진이 2012년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이 몰고 온 왼손 에이스 전성시대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동시에 저물었다. 지난 1~2년간 왼손투수들은 주춤했다. 오른손 에이스들이 펄펄 날았다.
▲ 왼손 에이스들의 부활과 뉴페이스 출현
지난해 유희관의 등장을 기점으로 다시 왼손투수들이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3승2패 평균자책점 2.70의 양현종(KIA), 4승3패 평균자책점 3.35의 김광현(SK)은 올 시즌 나란히 순항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몇 년간 부진과 부상에 시달리며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과거 류현진(LA 다저스)과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왼손 선발투수로 맹활약랬다. 하지만, 끝내 류현진을 넘어서지 못한 채 시련을 겪었다.
여기에 지난해를 기점으로 새롭게 출현한 느린 좌완 에이스 유희관(두산)이 올 시즌에도 맹활약 중이다. 4승 평균자책점 1.91로 평균자책점 2위. 유창식(한화)도 알껍질을 벗고 2승1패 평균자책점 1.82로 한화 뉴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유창식은 평균자책점 1위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장원준(롯데)도 4승 평균자책점 3.86으로 여전한 기량을 보여준다. FA 60억원 잭팟을 터트린 장원삼(삼성)도 4승1패 평균자책점 3.09로 좋은 모습.
▲ 외국인투수도 왼손바람
최근엔 구단들이 외국인투수도 왼손을 선호한다. 왼손 에이스 1차 전성시대 당시 톡톡히 학습효과를 본 구단들은 토종 왼손 에이스 키우기에 착수함과 동시에 왼손 외국인투수 구하기에 총력전을 기울였다. 실제로 2012년부터 활약 중인 쉐인 유먼(롯데)과 밴헤켄(넥센)은 올 시즌에도 꾸준히 제 몫을 해낸다. 지금은 떠났지만 벤자민 주키치, 크리스 세든도 LG와 SK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외국인 왼손투수는 2013년엔 최대 8명이었고 올해도 현재 5명(유먼, 밴헤켄, 레이예스, 앨버스, 티포드)이다.
유먼과 밴헤켄을 보유한 롯데와 넥센은 왼손 선발이 귀한 팀이었다. 올해 장원준이 롯데로 돌아왔지만, 장원준이 없던 시절 롯데 선발진은 오른손 일색이었다. 왼손 에이스의 필요성이 있었다. 넥센 역시 장원삼, 이현승 등의 트레이드 이후 왼손 에이스가 귀했다. 브랜든 나이트와 짝을 맞출 왼손 에이스로 밴헤켄이 제격이었다. LG 역시 봉중근이 마무리로 전업하면서 주키치의 몫이 컸다.
▲ 한국야구의 진화
류현진의 데뷔 이후 2008년~2010년 왼손 에이스 전성시대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왼손 에이스 전성시대는 좀 다르다. 단순히 왼손투수들이 왼손의 이점만을 갖고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엔 좋은 왼손투수가 드물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희소성이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외국인투수들을 중심으로 컷 패스트볼, 싱커, 투심 등 홈플레이트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직구 계열의 변화구가 급격히 많아졌다. 한 수도권구단 투수코치는 “커터와 투심은 여전히 외국인투수들이 국내투수들보다 구사 빈도도 높고 구위와 컨트롤도 좋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최근엔 왼손투수들도 이 대열에 합류한 모양새다. 더 이상 슬라이더, 체인지업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유희관의 경우 느린 커브와 싱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최근엔 포크볼까지 연마했다. 단순히 슬라이더, 혹은 체인지업 등 1개 정도의 변화구를 결정구로 삼았던 왼손 투수들도 변화구 구종을 늘렸다. 장원삼의 경우 더 이상 직구의 짝으로 슬라이더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체인지업을 장착해 홀수해 징크스를 타파했고 올 시즌에도 늘어난 선택지의 이점을 잘 활용한다.
여전히 국내야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타고투저다. 과거 한 차례 시련을 맛본 왼손투수들은 더 이상 같은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새롭게 전성기를 열어젖힌 왼손투수들도 몇 년간 인고를 거친만큼 타자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온다. 타자의 정교한 타격과 업그레이드 된 힘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구의 예리함과 구위의 묵직함을 키웠다.
야구를 짧게 1~2달을 지켜보면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몇 년 주기를 놓고 보면 어느 순간 변화와 발전이 느껴진다. 타자와 투수의 끊임없는 자기개발. 그 과정 속에서 다시 찾아온 왼손 에이스들의 전성기. 그리고 이들을 무너뜨리려는 타자들의 노력. 최근 몇 년간 하향평준화에 시달렸던 한국야구도 빠르진 않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증거다.
[위에서부터 유희관, 김광현, 유먼, 양현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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