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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정문성(33)에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참 어렵다. 연습과 본 공연은 달랐고,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따뜻한 작품 속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싶고 서로를 위로하며 작품 자체의 분위기를 전하고 싶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전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전쟁의 참혹함을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남과 북의 군인들이 100일간 함께 생활하며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처세의 달인이자 딸 바보인 한영범 역을 맡은 정문성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초반에는 정신이 없었고 사실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글루미데이' 공연과 연습을 함께 하다 보니 캐릭터와 친해질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 많이 친해지고 있고, 내 캐릭터와 친해지고나서 다른 캐릭터와 친해지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 "작품 망쳐놨다는 소리 들으면 안되니까…"
정문성은 힘들었던 첫 공연 당시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이것 저것 바빠 많이 힘들었고, 연습량과 상관 없이 마음의 문제가 컸다. 온전히 자신의 캐릭터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열 수 있는 여지가 당시엔 약간 부족했다.
정문성은 "편하게 할 수 있는 감정이나 연기도 어려워지더라. 여유라는게 있어야 자연스럽게 좋은 연기가 나오는데 한영범으로서의 여유를 찾기가 조금은 어려웠다"며 "여러가지 감정이라는 재산이 있으면 여유가 생기는데 사실 지금은 기능적인 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 않나 한다. 일단 기능적으로 뭔가를 해야 흘러간다는 생각이 있어 지금 마음을 잡으려 한다. 여유가 생기고 있는 거다"고 밝혔다.
사실 정문성은 그간 두 작품을 같이 해도 몸만 힘들지 마음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글루미데이' 때부터 체력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급격히 떨어진 상태가 됐고, 그러면서 마음이 많이 쓰여 고민도 많아졌다. 그의 말대로 여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글루미데이', '여신님이 보고계셔' 모두 호평을 받는 작품이라 더 고민된 것도 있다.
정문성은 "책임감이라면 책임감이 생기고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완벽하게 했냐의 의미를 넘어서 좋은 작품이 이상해졌다는 말을 듣게 되면 안되니까. 내가 못한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저 자식이 공연을 망쳐놨다'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웃음을 많이 포기하고 진지한 쪽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스스로 판단했을 때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죽음 앞에서 애드리브를 치면 장난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함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웃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조금 덜어내고 진지함을 갖다 붙이려 한다. 처음에는 웃음과 진지함 두 개 다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가져가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 비교적 표현하기 어려운 쪽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놓고 꾸역구역 가져가는 건 웃음으로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 "아버지에 대한 느낌 잘 몰라 힘들었다"
진지함과 웃음을 함께 가져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딸을 둔 아빠라는 캐릭터 자체도 어려웠다. 정문성은 "딸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 수 있을까 상상을 해봤다. 자식을 낳아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 결혼한 사람도 아니지 않나. 또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모습이 사실 내 머릿속에 없다"며 "솔직히 내겐 따뜻한 엄마의 느낌만 있어서 그게 제일 힘들었다. '아빠가 뭐지?' 잘 모르겠더라"고 털어놨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많이 해왔다. '빨래'에서도 옆집 예쁜 여자를 당연히 사랑할 수 있었다. '나쁜자석' 때는 남자를 사랑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것으로 다가가니 가능했다. 근데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달랐다. 공연 후 농담이지만 진희가 딸이 아니고 섹시한 여자일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생각하듯 말하고 표정을 짓는다고 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으니 충격이었다."
정문성에겐 흉내낼 이미지조차 없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 컸지만 외할아버지는 정문성을 엄하게 키웠고, 기본적으로 영범의 부성애를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 때 정문성은 느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의 나이 차이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아빠처럼. 아저씨처럼. 어쨌든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이 차이가 났을 때 그 표현 방법도 굉장히 많은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걸 순호라는 대상을 통해 보여줘야 하는데 안 됐던 것"이라며 "시커먼 남자한테 어떻게 여린 존재인 내 딸을 대입하겠나. 근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순호는 자신의 딸을 대입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하고 착한 이미지의 존재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게 안 되더라. 순호 중 건장한 애들도 있고, 어떡하나 했다. 연습 도중 든 생각이면 괜찮은데 공연 올리고 나서 이런 고민에 더 빠져서 힘들었던 것도 있다. 생각해보니 이전의 영범을 연기하던 나는 순호가 미친걸 알고 연기했다. '내가 널 이용할거야. 너도 그걸 이용해'라는 마음이 어딘가에 있었던 거다. 그래서 진심이 안 느껴졌던 것 같다. 이젠 좀 더 순호에게 속아야 한다. 참 공연마다 내 만족이 없는 것 같다. 좀 더 좋은 뭔가가 있을 것 같다."
▲ "우리의 도전들을 너그러이 봐주길"
정문성은 그렇게 영범을 이해했다. 영범은 순호와의 관계와 딸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남한으로 돌아가 살아 남아야 된다는 목표가 있다. 때문에 작품 말미 끝까지 자신이 살아남을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순호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순호가 조금 더 각별하고 애틋한 것은 순호를 통해 내 딸이 보이기 때문이다. 근데 딸을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순호를 위해 죽을 수는 없다. 가엽고 안타깝지만 누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영범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고 밝혔다.
영범을 이해하니 작품의 따뜻함이 더욱 와닿았다. 각각의 에피소드, 주인공들은 물론 그 주변 인물들의 아픔도 확 느껴진다. 정문성은 "사실 에피소드가 펼쳐질 때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보다도 그 외의 인물들이 더 보인다. 각자의 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그 때 엄청 따뜻해지는데 그 때 에피소드 외의 인물들을 보면 더 슬픈 감정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문성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정말 좋은 작품이고 모든 배우, 모든 스태프들이 그걸 느끼고 있다. 정말 더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시도 쉬지 않는게 사실이다. 부족한 것을 지적해주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순간적인 실망으로 인해 자신의 꿈 속에 있던 이 작품을 버리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분명 이 작품은 더 좋아지고 더 발전할 것이다. 이런 작품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도 더 좋아질 거라 확신한다. 물론 지금도 다들 너무 잘 하고 있지만 관객들이 이 작품을 사랑했던 마음을 계속 갖고 계셨으면 좋겠다. 우리의 도전들을 너그러이 봐줬으면 좋겠다. 내가 만족한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게 아니다. 난 동료들을 믿고 함께 할 거다. 그렇게 하다 보면 관객들도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한편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오는 7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정문성, 공연 이미지. 사진 = is ENT, 연우무대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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